쉰하나
인정을 받는 순간. 사람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들뜨지 않았고 오히려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오래 붙들고 있던 긴장이 풀리자 기쁨이 오기도 전에 공백이 스쳤다. 이제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감각이 스며들었다. 끝에 도착했다기보다, 길 위에 가만히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성취는 분명했지만 마음은 그보다 앞서 조심스러워졌다.
왜 그리도 조심스러워졌을까. 왜 나는 자만할 수 없던 것일까. 과거의 과열된 순간들이 희미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소모시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인정받은 지금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다시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면 이전의 균열이 반복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앞서 달리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불안은 경고처럼, 그러나 공격적이지 않게 머물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다른 감각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와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성취가 삶 전체에 놓인 안정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더 붙이지 않아도 구조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미래를 급히 끌어당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다. 오늘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내일이 이어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처음으로 성취가 부담으로부터 벗어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큰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 지금 가진 것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과로와 극단적 몰입은 더 이상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덜어내는 선택이 필요했다. 삶과 작업, 관계가 동시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남기고 싶었다. 속도를 줄이는 대신 방향을 분명히 하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물러남이 아니라 조정이었다.
그 선택 이후로 주변의 풍경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함께 웃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정은 경쟁의 끝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기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앞에 서서 증명하지 않았다. 같은 높이에서 잔을 나누듯 성취를 나누었다. 그제야 이 승리가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생각을 안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선택들을 다시 꺼내어 점검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미리 걱정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렸다 닫혔다. 그 과정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자꾸 미뤄졌다. 끈질긴 불안은 조용히 집중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을 정리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나 고르기로 했다.
그 일은 크지 않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배우는 자세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작업이었다. 완성도와 결과를 따지지 않았다. 오늘 할 수 있는 분량만 정해두고 거기까지 가는 것이 전부였다. 막연한 불안은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 앞에서 힘을 잃었다. 생각이 줄어들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시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은 진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체감되었다. 한 번의 시도, 한 번의 기록, 한 번의 수정이 하루를 채웠다. 그 하루가 지나자 불안은 설명할 필요 없는 것으로 변했다. 잘하고 있는지보다,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는 비교도, 평가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오로지 익히고 반복하는 시간만 남았다. 마음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안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쌓이는 감각은 이전의 성취와 달랐다. 박수나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 종류의 만족이었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단단했다. 작은 시도들은 나를 다시 초심자의 자리로 데려갔다. 그러나 이 초심은 미숙함이 아니라 여유에서 나왔다. 이미 잃을 것이 없다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조차 부담이 되지 않았다.
지금의 기준은 분명하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오늘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생각을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적인 한 걸음을 놓치지 않는다. 이 방식은 느려 보이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성취 이후의 시간은 이렇게 다시 채워진다. 크게 확장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앞으로 간다는 것을 믿는다.
작은 시도들이 반복되자, 다시 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증명하기 위한 언어가 아닌 정리된 경험에서 자연히 나오는 말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해왔는지가 또렷해졌다. 이때의 자신감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왔다. 손에 익은 방식들이 하나의 도식처럼 연결되었다. 나는 더 이상 즉흥에 기대지 않고, 이미 검증된 흐름을 신뢰했다. 이 신뢰가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그 흐름은 혼자만의 방식에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상황이 오자 말은 더 단순해졌다. 복잡한 이론보다 태도와 기준이 먼저 작용했다. 아는 것을 과시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건네는 법을 택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신뢰였다. 오래 유지되어 온 방식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드러났다. 나는 역할을 넓히기보다 자리를 분명히 하기를 선택했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고집을 부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복 속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방식이라 해도 지금의 상태와 맞지 않으면 내려놓았다. 전통처럼 남겨둘 것과, 과감히 버릴 것을 구분하는 감각이 생겼다. 이 감각은 서두르지 않았고 대신 오래 버텼다. 기준은 바깥의 기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맞춰졌다. 그렇게 작업과 삶의 윤곽이 다시 잡혔다.
휴식은 포기처럼 보이지 않는 선에서 힘을 비축하는 선택이었다. 버티는 힘은 밀어붙임이 아니라 간격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간격 덕분에 나는 다시 오래갈 수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고 중간에서 숨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유지의 기술이었다. 계속 서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열정이 아니었다. 지치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면 충분했다.
어느 날 문득, 마음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감정의 상태를 점검하거나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의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분명했다. 이 확신은 급하지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려는 방향이었다. 감정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추진력이 되었다.
관계 속에서도 태도가 달라졌다. 누가 옳은지, 무엇이 맞는지를 가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위치를 분명히 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중심은 전달될 수 있었다.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을수록 말은 간결해졌다. 갈등을 정리하기보다 방향을 제시하는 쪽을 택했다. 이 선택은 주변의 공기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두 갈래의 선택 앞에서도 망설임은 길어지지 않았다. 완벽한 해답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가장 오래갈 수 있는 쪽을 고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결단은 단호했지만 공격적이지 않았다. 먼저 나의 길을 걷는 방식이었다.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았기에 구태여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이 주도성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과 불편함을 모두 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도 방향은 유지되었다. 그 덕분에 감정은 장애물이 아니라 연료가 되었다. 주변의 반응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상황의 판사가 아니었다. 움직임으로 답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핵심은 명확했다. 정리하지 않아도, 판단하지 않아도, 나아갈 길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결론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추진력이었다. 이 추진력은 과열되지 않았고 쉽게 꺼지지도 않았다. 중심을 잡은 채 앞으로 가는 태도 자체가 메시지가 되었다. 나는 이 방향으로 계속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균형이란 열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지 않도록 방향을 정렬하는 능력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건너온 것을 인정한 채 이동하는 태도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