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15화

극복

마흔다섯

by 김가희






연락 하나. 그 짧은 소식 하나에 마음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다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가슴 안쪽이 찔리듯 아파왔고, 통증은 이유를 묻기도 전에 먼저 몸에 도착했지. 이성이 그것을 과장이라고 부르기도 전에 이미 감정은 반응을 끝내고 있었다네. 이 아픔이 사랑 때문인지,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남아 있는 기대 때문인지 가늠하려 했지. 그 고통의 익숙함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네. 익숙함은 우리에게 이유를 묻지 않게 만들기에 가장 위험하기도 하니까.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식으로, 기대 없이 확인하는 화면 앞에서는 비슷한 무너짐이 찾아오곤 했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감각을 부정하면서 반사적으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네. 돌아오는 침묵이 나를 겨냥한 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히 알고 있었다네. 그래서 이 감정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 인식이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키기도 했다네. 책임이 외부에 있지 않다는 것은 위로보다 무거운 판단으로 남게 되니까.



나는 이 감정을 분석하려 했여 이름을 붙이고 구조를 나누려 했다네. 왜 이 관계에서만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왜 지나간 시간에 이렇게 매달리는지 조용히 따져보았지. 이성은 충분한 설명을 제공했지만 그것이 통증을 줄여주지 않았네. 알고 있다는 사실과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다른 문제였지. 머리로는 끝났다고 판단하면서도, 감정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반응하고 있었다네. 아직 정리되지 않았을 뿐, 잘못된 감정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았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정지에 가까운 태도였지. 연락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루를 견뎠다네.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다루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려 애썼지.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이어가면서, 계속해서 안쪽의 균열을 관찰하고 있었네. 울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침착하다고 해서 단단해진 것도 아니었지. 다만 더 이상 스스로를 흔들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선택만은 지키고 싶었다네. 그 정도의 통제가 그때의 나에게는 전부였지.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겠다는 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네. 계속 버티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연장이란 사실을 이제는 모른 척하기 어려웠네. 그렇다고 당장 무언가를 끊어내거나 정리할 힘도 없었지. 다만 이 감정을 그대로 두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옅게 스쳤다네. 가능성에 가까운 감각이었지. 그러나 그 미세한 균열이 이후의 모든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은 아직 알지 못했다네.




그 가능성은 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을 긋는 감각에 가까웠네. 이제는 이 통증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 아니면 어디서 멈춰 서야 하는지 가늠하게 되었지. 더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는 판단은 지금의 자리에 나를 붙잡아 두었다네. 이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말도, 나아지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야. 다만 더 이상 중심이 흔들리는 자리에 나 자신을 세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고 있었네. 그 선택은 작았지만 분명했어. 나는 무너짐의 방향이 아니라, 머무름의 범위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네.


상실에 대해 더 말하지 않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였지. 충분히 확인한 사실을 다시 꺼내는 일이 나를 헐겁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 그래서 무엇을 잃었는지를 세는 대신,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의 형태를 점검하기 시작했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는 것들, 매일 반복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들 말이야. 소소한 지속이 현실로 나를 부르는 역할을 하고 있었네.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고 있었지. 그 반복이 점점 하나의 울타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네.


나는 더 이상 감정을 해결하려 들지 않았네. 해결이라는 말이 주는 긴장과 부담이 지금의 상태에는 맞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대신 감정이 지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쪽을 택했네. 침묵, 기록, 정리되지 않은 메모들 같은 것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지.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무너뜨리지 않아도, 그저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네. 삶이 최소한 흩어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네.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지.



겸. 그대의 부재 역시, 이 울타리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네. 그대를 지금의 삶 안에 이미 존재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려 했지. 그것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두는 용기에 가까웠네. 아직 이해되지 않은 감정들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지. 이 관계가 나를 규정하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하지도 않는 위치를 찾으려 했네.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는 자주 멈춰 서서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지.


아직 끝을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네. 다만 지금의 시기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분명해졌어. 감정이 다시 흔들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 흔들림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네. 이미 한 번 이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조용히 유지되는 일상, 반복되는 확인,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삶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는 감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네. 이미 여러 번 끝났다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다시 부정해 왔다는 사실이 조용히 떠올랐지. 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통증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네. 그래서 나는 이 관계가 살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명확히 적어 내려갔다네. 감정이 아니라 사실의 형태로 말이야.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더 이상 거짓된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까웠지. 이 순간을 기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선이 하나 그어졌다는 것도 분명히 느껴졌네.


침묵은 도망이 아니라 형식이 되었네. 설명하지 않고, 묻지 않고, 설득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끝을 유지하기로 했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문장들, 보내지 않았던 편지와 초안들을 다시 꺼내보았네. 그것들은 이미 역할을 다한 기록처럼 보였지. 나는 편지를 정리하며 이 관계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배치하고 있었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위치를 정리하는 작업에 가까웠지. 그렇게 기록은 질서를 만들어주었네.


그 과정에서 나는 이 관계를 특별한 비극으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네. 누구나 겪는 상실 중 하나로, 다만 나에게는 오래 남았을 뿐이라고 말해주었지. 신성화하지 않고, 폄하하지도 않는 태도를 지키려 애썼네. 그 태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처럼 느껴졌지. 관계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서사로 묶지 않고, 지나간 장으로 분리해 두는 방식이었네. 그렇게 해야만 이 상실이 내 삶 전체를 대표하지 않게 할 수 있었지. 질서가 생기자 감정은 조금씩 자리를 잃고 있었다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선택의 문제였네. 더 애도할 것인지, 아니면 이 지점에서 방향을 정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야. 나는 더 깊이 파고드는 쪽을 택하지 않았네. 이미 충분히 내려왔고, 그 바닥이 어디인지도 확인했으니까. 이제는 깨달음을 안은 채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걸 알았지. 감정이 정리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미루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었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꾸는 쪽을 택했다네.


그 방향은 격렬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었네. 다만 내가 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준들을 하나씩 세워나가는 일이었지. 무엇을 하지 않을지, 어디까지 돌아볼지를 정하는 선택들이었네. 그 선택들은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끌고 있었지. 이제는 감정이 앞서고 판단이 따라오는 구조가 아니라, 판단이 먼저 서고 감정이 그 뒤를 따르는 상태로 바뀌고 있었네. 변화는 조용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확실했지.


그대의 부재는 더 이상의 질문이 아니었네.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받아들인 상태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어 있었지. 나는 이 끝을 끌어안고 멈춰 서지 않기로 했네. 그렇다고 잊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세. 다만 사실을 등에 지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선택했을 뿐이네. 그 선택이 무엇인지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었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순간 이후로 나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네.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달리 유난히 조용하게 흘러갔다네. 일부러 사람을 피한 것도, 세상과 등을 진 것도 아니었지.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내려졌을 뿐이네. 말이 줄고, 기록이 늘었으며, 감정은 바깥으로 향하기보다 안쪽에서 정리되고 있었지. 이 고요는 외로움과는 달랐네. 누군가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고립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지. 혼자 있는 동안 나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네. 거리감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지.


이제는 감정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네. 좋았는지, 아팠는지를 따지기보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정리하려 했지. 이 관계가 내 삶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려 애썼네. 그렇게 해야만 공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스스로에게도, 겸 그대에게도 마찬가지였네. 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으면서도, 끝이 필요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남겨두었지. 이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감각을 얻고 있었지.



상실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피하지 않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네. 끝났다는 말을 돌려 말하지 않고, 상실을 애써 다른 의미로 치환하지도 않았지. 사라진 것은 사라졌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두었네. 사실을 직면한다고 해서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지. 오히려 그 부정하지 않음이 나를 더 또렷하게 현재에 붙들어 두었네. 그대의 부재 역시 그렇게 바라보게 되었지.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삶 전체를 대신 맡기지 않는 방식 말이야. 그 균형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네.



다음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분명했네. 서둘러 새로운 것을 붙잡지도 않았고, 과거를 끌어안은 채 머물지도 않았지. 다만 지금의 기준을 유지한 채, 할 수 있는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네.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말이야. 이동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네. 그저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걸음이었지. 그래서 나는 빠르지 않았고, 그 느림이 오히려 나를 안정시키고 있었네.


모든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갔다네.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현재를 흔드는 요소로 작동하지도 않았지. 부재는 이제 설명이 아니라 조건으로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조건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를 배운 셈이었지. 이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침묵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더 말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었지. 그렇게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네.





부재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나를 흔들지 않는다.

끝을 인정한 자만이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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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