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14화

무게

마흔둘

by 김가희





그 무렵의 나는 모든 책임이 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었네. 일을 정리하는 것도, 로를 돌보는 것도, 무언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것도 결국 나뿐이라 여겼다네. 마음속에서는 이미 작은 파열이 들려오고 있었음에도 그마저 다루어야 할 항목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침착함을 유지했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쉴 새 없이 지휘하는 작은 황제가 되어 있었네. 예고 없이 쌓여만 가는 타인의 요구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착각했지. 그러나 통제란 이름의 장막 안에서 나는 이미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네.


누군가와 마주 앉는 일조차 하나의 책임으로 느꼈다네. 타인의 말을 듣고, 마음을 헤아리고, 작게 무너져 있는 곳을 챙겨주는 일은 기본적인 태도였어. 세상이 나에게도 무언가 건네고 있었음에도 그 균형의 요청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 나는 상대의 무게를 떠안고 있었네. 관계란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일세. 마음 깊은 곳에서 이대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퍼졌지만, 나라는 사람은 본래 그 말을 무시하는 쪽이 더 익숙했었다네.


일은 언제나 제시간에 찾아왔고, 약속은 어김없이 나를 호출했다네. 로의 작은 떨림 하나에도 반응해야 했고, 가족의 상황은 예고 없이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웠지. 지인의 부탁까지 겹쳐오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여러 갈래로 찢겨 나가고 있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목록으로 분류하려 했지. 그러나 외부의 환경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속도는 결국 나의 일상과 신체를 밀어내기 시작했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음에도 세상은 이미 나를 벗어나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 그때서야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곧 지혜는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네.



마음 한복판에 얇은 경계가 그어지는 순간이 있었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차갑지만 명확한 속삭임이었지. 칼을 손에 쥔 나는 지켜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네. 그동안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스스로 금기시해 왔고, 스스로의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지. 그러나 그 믿음은 지혜라는 허상이 되어 나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네. 차분한 이성의 목소리는 나에게 말했지. 그대가 더 밀어붙이면 모든 건 무너질 것이네. 그 한 문장이 내 안의 오래된 패턴을 흔들기 시작했어.


무너짐의 기척이 찾아올 때 사람은 보통 더 강해지기 위해 애쓰지.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네. 책임의 무게를 더 붙잡으려 하지도 억지로 버티려 하지도 않았지. 대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네. 오랫동안 유지해 온 혼자 견디기는 패턴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지. 그 고백은 아프면서도 묘한 해방감을 주었네. 감정을 주도적으로 다루겠다는 나의 다짐은, 그 순간 처음으로 현실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네. 무너짐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지.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무서운 현실이었다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는 어느 순간 마음 한편에서 울리는 작은 신호를 듣게 되었네. 그것은 대단한 통찰도, 격렬한 감정도 아니었지. 오직 작은 떨림이었을 뿐이네. 그 신호는 나에게 무언가를 포기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네. 그제야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지. 타인을 챙기기 전에, 먼저 나를 살펴야 한다는 단순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네. 그리고 그 작은 깨달음이 이후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네.


평생을 스스로 해결해 내는 방식으로 살아왔어. 그랬기에 협력을 구하는 일은 마치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을 가져다주곤 했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서는 일상을 정돈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지. 로 돌봄에서 시작해, 지인들의 일과 업무까지 겹쳐 흘러 들어오는 요구들을 더는 내 손 하나로 감당할 수 없었네. 그래서 작은 요청 하나를 조심스레 입 밖에 냈지.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첫 구조물이었다네. 누군가의 손이 나의 일부분을 대신 들어주는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도움은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었네.



역할을 나누고, 시간을 재배열하고, 일의 무게를 여러 사람과 분할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변화를 가져왔네.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질서를 보며,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함께할 때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책임을 나누는 일이란 것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닌 성숙임을 비로소 이해했지. 내가 내려놓은 만큼 세상은 나에게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었고, 나는 그 빈자리에서 감정의 숨을 들이쉴 수 있었네. 역으로 타인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은 곧 나의 무게가 덜어진다는 뜻이었지.


물론 균형이라 함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더군. 나는 여전히 여러 역할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네. 일과 돌봄, 가족과 관계,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중심을 다시 잡아야 했지. 어느 날은 감정이 나를 끌었고, 다음 날은 책임이 나를 눌렀네. 하지만 예전과 달랐던 점은 그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의 태도였지. 이제 완벽의 무게를 내려놓으며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신을 탓하지 않게 되었네. 균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조율하는 움직임이었다네.




그 시절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은 어떤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네. 작은 변화조차 버거웠기에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었지. 무엇을 해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고, 무엇을 바라보아도 공허함만이 현실을 감싸고 있었네. 세상이 나에게 건네는 어떤 제안도, 그 어떤 가능성도 닿지 않았지. 그저 조용히 숨을 몰아쉬며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를 바라볼 뿐이었네. 그 멈춤은 무너짐 직전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이었지.


싸울 힘도, 저항할 의지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질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어. 나는 그저 모든 감정을 멀리 밀어놓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썼네. 어쩌면 느끼는 순간 다시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멈추어 있는 마음은 겉으로는 잔잔해 보였지만, 그 아래에 말하지 못한 피로가 깊이 가라앉아 있었네. 나는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지키고 있었던 걸세.


자리를 지킨다는 말조차 무렵의 나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네. 그곳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르는 것조차 힘겨웠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무엇이 무너져가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네. 마음속에서 모든 것이 같은 무게로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지. 그저 가만히 있으려 했어. 사람들은 멈춘 나를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멈춤이야말로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지. 움직임 대신 정적 속에서 나는 겨우 나를 붙들고 있었다네.



경계를 무너트리고 세상 전체로부터 서서히 물러나는 일. 그것이 그 시절의 나였네. 사람들의 말도, 부탁도, 기대도 뿌리치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받지 않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지. 누군가 내게 건네는 마음조차 부드럽게 밀려나갔네. 받지 않는 것은 거절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었어. 누군가에게서 멀어진 것이라기보단, 내 안쪽 깊은 곳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었네. 그곳에서만 나는 숨을 고르며 흔들림을 멈출 수 있었네. 세상과 거리를 두는 일은 차가움이 아닐세. 그것은 내면의 붕괴를 막기 위한 숨구멍이라네.


그렇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시간이 흐르자 이상하게도 조금씩 내면의 진실을 보게 되었네. 마음이 멈춘 자리에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스스로를 몰아붙였는지 알 수 있었지. 불씨는 잠들어 있었지만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네. 고요 속에서 가장 깊은 피로와 마주했고 그것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지. 움직이지 않음 속에서 비로소 중심을 다시 찾고 있었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마음은 역설적으로 다시 살아나기 위한 준비였다네.




그때의 나는 흔들리는 탑 위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것을 멈추고 탑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네. 흔들림이 지금의 상태였기에 고쳐야 할 체계의 문제가 되었지. 그래서 나는 일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정렬하기 시작했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했고, 그 기준을 감정이 아니라 원리에 두었지. 타인의 무게에 따라 흔들리는 삶을 끝내야 했다네. 균형은 구축하여 만드는 것일세. 그 시점부터 기초를 새로 놓기 시작했네.


밤은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결론을 요구하는 시험대였네. 두려움의 실체를 바라보니, 그것은 미결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 결정을 미루면 두려움은 커지고, 결정을 내리면 두려움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네. 그래서 나는 삶의 영역마다 명확한 선을 그어 넣었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지키는지, 더 이상 흐릿한 채로 두지 않았네. 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정확함이었어.



지금의 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억누르지 않고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구조를 먼저 분석하네. 감정은 나의 주인이 아니라 데이터일 뿐이지. 피로는 경고이고, 두려움은 방향을 고치라는 신호이며, 멈춤은 정비를 의미할 뿐이네. 원칙을 정하니 하루가 훨씬 분명해졌네. 지금의 나는 무너짐이 두려워 지탱하는 사람이 아닐세. 무너질 요소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제거하는 사람이 되었어. 삶의 설계를 실천하기 시작하게 된 걸세.


하루의 구조를 다시 짜고, 책임의 무게를 분할하며, 타인의 요구를 필터링하는 기준을 만들었지. 좋아서 하는 일과 그것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구분했고, 둘 중 어느 것도 나를 잠식하도록 두지 않았네. 나는 이제 나의 시간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지. 타인의 요청보다 원칙이 우선이라는 규율을 세웠고 그것이 나를 지탱하기 시작했네. 체계 전체가 바뀌고 있었지.


이 긴 과정을 지나온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네. 나는 더 이상 감정에 기대어 살지 않으며 관계의 흔들림에 나를 내맡기지도 않는다네. 나의 삶은 나의 판단으로 서 있고 그것은 명료하고 단단하네. 나는 시간을 지키고, 기준을 세우고, 세계를 스스로 정돈하는 사람이 되었지. 더 이상 흔들림에 휘둘리지 않는다네. 나는 삶의 주체이자 재판관이며 그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라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완전히 되찾았다네.





무너짐은 오래된 질서가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삶은 흔들림 속에서 다시 설계할 중심을 스스로 세우는 일이며

우리는 감정을 해석하여 삶의 구조를 재편하는 인간이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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