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13화

동행

서른아홉

by 김가희





어둠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나를 향해 오는 어떤 모호한 기류가 있다네. 이번에는 그것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지. 나는 그 느낌이 불안인지 아니면 오래된 감정의 흔적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흔들림이 나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따뜻함을 깨우는 듯했지. 마치 달빛 아래에서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듯, 마음의 뿌리에서 오래 묻혀 있던 무언가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기분이었네. 나는 그 변화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초대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아차렸다네.


나 자신만을 돌보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네. 감정이 나를 공격할까 두려워 작은 파동조차 피하며 살아온 시간이었지.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것이 내 세계를 침범당하는 일이라 여겼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방어기제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삶은 어느 순간 홀로 세우는 것만으로는 모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는 때가 찾아오지 않는가. 이번이 그때였다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더는 혼자만의 고요로는 채워지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지. 감정은 숨기는 대신 바라볼 때 비로소 길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네.


그 자각을 끌어당긴 건 어쩌면 내가 쌓아온 고독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네. 스스로 만든 작은 세계 속에서 나는 나름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네. 비록 외로움이 섞여 있었으나, 고독은 나를 비워내지 않고 오히려 채우는 쪽에 가까웠지. 그 덕분인지 이제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 무리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네. 누군가를 돌보고 싶다는 충동이 감정적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지. 그 흐름은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아니라네. 그것은 내 안의 여백이 다른 존재를 맞아들일 만큼 단단해졌다는 증거였지. 그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하고 은근히 따뜻하기도 했다네.



겸. 길 위에서 로를 만난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벅차오르는 감정이 밀려온다네. 녀석이 조심스럽게 내 뒤를 따라오던 발소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약속처럼 느껴졌지. 나는 그 작은 존재가 왜 그토록 자연스럽게 내 품에 들어오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네. 씻기고,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오히려 아주 작은 생명 하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속 깊은 심지를 밝히는 듯했네.


나는 이 시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곱씹게 되었네. 돌봄은 즉각적인 감정도, 화려한 결심도 아니더군. 그것은 차분히 쌓여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네. 관계가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급함이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것을 로가 가르쳐주었지.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네. 혼자 버티던 지난 시절과 성취 속의 공허는 이 순간을 맞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자라나는 삶이 내게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선명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네. 그 마음이 어쩐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듯했다네.




로를 데려온 이후 집 안의 공기가 이상할 만큼 부드러워졌네. 공간 전체에 어떤 따스한 숨결이 번져가는 느낌이었지. 그 공기는 단순한 분위기를 넘어, 내 안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 인간의 마음이 열리면 가장 먼저 주변의 환경이 반응하는 법 아니던가. 로가 곁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돌봄이란 행위가 얼마나 잔잔한 풍요를 만들어내는지 실감하게 되더군. 감정이란 결국 나아가려는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 본능이 이제야 나에게 제 자리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지.


그렇게 풍요의 기운 속에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네. 누군가와 웃으며 나누는 짧은 순간들이 어쩌면 삶 전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축일지도 모르겠지. 한동안 관계를 무겁게만 다뤘던 것 같네. 깊이 이해해야 하고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로를 돌보며 깨달았네. 관계는 때로는 가벼워야 하고, 부담 없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을. 그 가벼움이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방식이더군. 나는 오랜만에 관계가 주는 순환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네.



이렇게 안팎의 기류가 달라지니 과거의 상처들도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네. 예전 같았더라면 그 상처들이 나를 잡아끌었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지. 나는 상처들을 조용히 배에 싣고 강을 건너는 사람 같았네. 떠나야 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기 마련이고, 남아야 하는 것들은 자연스레 남는 법이지 않겠나. 나는 과거의 무게가 점점 옅어지는 것을 느꼈네. 치유의 목적지는 아닐지라도, 분명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감각 하나만은 확실하였다네.


요즘 들어 풍요가 나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누어져야 완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졌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또 그 마음을 되돌려 받는 일은 작은 잔치와도 같았네. 아주 사소한 웃음이나 짧은 안부 한마디를 그저 흘려보냈던 예전과는 달랐지. 나는 순간들이 쌓이는 방식을 다시 배우고 있었네. 그리고 관계의 방향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감정의 흐름과 삶의 타이밍이 함께 엮여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네.


겸.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혼란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려는 쓰라린 의지일세. 돌봄은 이미 내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관계는 다시 부드러운 순환을 시작했네. 이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네. 더 이상 예전의 나처럼 혼자 있는 고요에만 기대고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지. 나는 이제 함께 건너는 삶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다음 장의 문을 열고 있었어.




요즘 들어 오래된 기억들이 자주 떠오르네. 마음이 조금 안정되니 과거의 장면들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아오는 듯했지. 그 기억에는 온기가 있었네. 어릴 적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감각이라든가,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순간 같은 것들 말일세. 그때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네. 그 아이는 심성이 여렸지만 내면이 단단했다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다른 존재의 마음을 돌보고 싶은 건 어쩌면 그때의 나를 늦게나마 어루만져주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 현재는 늘 뒤늦게 의미를 되찾는 법이니까.


그렇게 과거를 어루만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네. 삶은 혼자 걸어온 것 같아도 어느 순간마다 누군가의 미세한 도움과 온기를 받으며 이어져 온 것이었지. 나는 그동안 자신을 지켜내느라 이 연결의 순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네. 그런데 마음이 열리고 감정이 흐르기 시작하니, 과거의 인연들이 마치 작은 등불처럼 다시 내 곁에 놓이는 것 같더군. 그때의 웃음, 그때의 위로, 짧지만 선명했던 교류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네. 사람 간의 온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었지.



이상한 건 이 기억의 흐름이 지금의 나를 위로한다는 점이었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도 마치 현재에 조용히 스며들어 나의 감정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지. 순수함과 순환이 만나면 감정은 깊어지지 않고 넓어지는 쪽으로 나아가더군. 나는 이 넓어진 감정이 앞으로의 관계를 다르게 만들 것 같다고 느꼈네. 예전처럼 상대를 해석하려는 마음보다, 함께 머무르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앞서가는 느낌이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과거에서부터 줄기를 따라 천천히 이어져 내려온 것처럼, 지금의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흐름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네.


나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빛나는 것을 보았다네. 이것은 아주 작은 안정감의 형태였지. 타인과의 관계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일정한 흐름을 유지할 수는 있다는 그 희망 말일세. 그것이 지금의 나를 붙잡아주는 듯했네.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하더라도 이해의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관계는 천천히 깊어지는 법이 아닌가. 감정이 완성된다는 건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가 안정된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다네.


이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삶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 안에서 울린다네. 관계의 안정이란 어쩌면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도달하는 작은 평온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 평온의 입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 로와의 만남, 지나온 인연들, 새롭게 열리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마치 하나의 강줄기처럼 합쳐져 나를 앞으로 떠밀고 있네.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 아무리 담담한 척을 해도 은근히 떨리지 않겠나. 나는 진심이 주는 그 떨림을 숨기지 않기로 했네. 진심은 들키는 순간부터 존재가 생긴다네. 얼마 전부터 로를 돌보며 배운 건 이것이었지. 마음이 흐르는 것을 억누르기보다, 흐르는 방향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더 정직하다는 사실 말일세.


그러나 겸. 마음이 움직인다고 해서 세상이 다 부드러운 것은 아니더군. 때때로 내 안의 방어선이 불쑥 치고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네. 그 방어가 불신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네. 그저 나를 지키려는 오래된 생존 방식의 흔적이었지. 그 오래된 힘이 나를 끌어당기면 잠시 멈춰 서 생각했네. 지금 이 감정이 과거의 반사인지, 아니면 새로 태어나는 마음인지 구분하려고 말일세. 흔히 우리는 불안과 진심의 감각을 혼동하지 않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싶었네. 중심을 지키면서도 마음을 닫지 않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가장 신중히 다뤄야 하는 균형이었다네.



신기하게도 이 균형을 배우는 과정에서 나는 오래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여유를 발견하고 있었다네. 나는 다시 배우는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 있더군. 감정도, 관계도, 돌봄도. 이미 알고 있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새로 배워야 하는 영역이었던 것이었네. 그래서 누군가의 한마디, 한 행동, 심지어 로의 작은 움직임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네. 그 배움이 나를 한층 느리게 만들고, 동시에 더 깊게 만들더군. 배우려는 마음은 사람을 방어보다 성장 쪽으로 이끌어주는 듯했다네.


이렇게 감정이 흐르고 중심이 다져지고 새로운 태도를 배우는 과정을 겪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더 또렷해졌네. 나는 이제 관계를 맞서는 일이 아니라 ‘함께 서는 일’로 이해하고 있었다네. 그간 주어졌던 긴장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였지. 그리고 내 안에서 다시 일으켜진 배움의 태도는 그 의지를 부드럽게 다듬어주고 있었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민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일이 아니었다네. 오히려 내 안의 가장 건강한 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점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네. 흐름과 중심, 그리고 배움이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지. 마음은 움직이고, 나는 그 움직임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자라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이든 다시 배울 태도가 준비되어 있으니 말일세. 이 세 가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모른다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예전처럼 두려움으로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지. 감정이 흐르는 방향에 발을 내딛는 이 감각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가장 진실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라네.





돌봄은 나의 존재가 확장되는 방식이며

관계는 서로를 순환시키는 생명의 흐름이다.

우리는 감정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배움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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