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아홉
겸, 요즘 나는 묘하게 서늘하고도 명확한 기분 속에 머물러 있다네. 젊은 대표와 함께하는 협업은 더 이상 조화로운 축제가 아니라네. 그것은 내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냉정하게 되묻는 과정이지. 그의 가게를 촬영하고 글을 쓰는 일은 나를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정교한 설계처럼 느껴졌지.
작업을 정리할 때면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끝내고 새로 시작하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했네. 누구의 위로도 필요치 않은 이 단절된 구조 속에서, 나는 비로소 불필요한 감정을 걷어낸 자존감을 발견한다네. 하루를 마치면 꽤나 담백했다고, 비본질적인 것들이 잘려 나간 자리만 남았다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지.
그런데 그 명료함 한가운데에서 어떤 서늘한 직시가 시작되었다네. 그의 말투나 선택을 관찰하는 내 시선이 단순히 일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지. 그것은 그가 다음에 내릴 선택을 미리 예견함으로써,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의 자리를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시도였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지나치게 날이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네. 정보를 수집하려는 집요함이 과연 협력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아니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자아의 마지막 저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묘한 긴장이 남는다네.
그러다 문득 이 시선이 익숙한 유령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의 나이와 방식에서,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하던 오래 전의 내가 보였기 때문이지. 아직 확신을 갖기 전의 내가 그의 모습 위에 포개져 있었다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장면으로 그를 장사 지내고 있었던 것 같네. 그가 선택을 내릴 때마다 그것이 현재의 판단인지 아니면 내 낡은 궤적의 반복인지를 가늠했지. 나는 그를 동료가 아닌 내 과거의 표본으로 여기고 있었던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내가 가졌던 안정이란 실상 과거의 무덤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음을 알게 되었네. 이 자각 이후로 나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거대한 정지 앞에 서 있다네. 지금 당장 어떤 결론을 내버리는 것은 죽어가는 자아를 억지로 살려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
나는 일부러 말과 행동을 죽이고 상황을 응시했다네. 판단을 유보한 채 이 상태를 잠시 정지시켜 두는 것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야. 그것은 낡은 관계의 형식을 해체하는 필연적인 의식이라네.
이 안정이 실제인지 아니면 과거를 투영한 잔상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섣부른 의미 부여를 멈췄다네.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 내가 그를 통해 보고 있던 환상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까지는, 이 정막이 가장 정직한 선택이 될 듯했네.
잠시 덮어두었던 생각들이 다시 움직이자 내 안에서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어. 겉으로는 고요했으나 협업 과정에서 드러난 이견들은 서로의 방식을 넘어서고 있었지. 그것은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더군.
누가 옳다기보다 더 이상 섞일 수 없는 선이 그어지는 과정이었으니, 나는 오히려 그 단절 속에서 긴장을 느꼈네. 안정 아래 묻어두었던 판단들이 고개를 들었지. 쉬어 두었던 사고가 비정한 현실과 부딪히기 시작한 셈이라네.
갈등은 외부의 다툼이기보다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났다네. 그것은 익숙했던 태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자리를 요구했지. 협업이라는 이름 아래 조율할 지점이 늘어날수록, 나는 주도권이 아닌 생존의 경계선을 고민하게 되었다네.
이 관계를 어디까지 열어두고 어디서부터 도려내야 하는지 판단이 필요해졌지. 이전처럼 모든 걸 유보해 두는 미지근한 상태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국면이 왔네. 마음속 소란을 겪으며 나는 비로소 이 갈등이 피할 수 없는 변화의 신호임을 받아들였네.
불편함은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라네. 그것은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산통과도 같았지. 이제 초점은 이전의 관계가 복원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본질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로 옮겨갔다네.
갈등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고수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비로소 선명해졌지.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기준에 나를 가둘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네. 이 자각이 낡은 것을 태우는 불씨처럼 마음 한쪽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네.
아직은 파괴의 흔적이 더 크지만, 분명한 시작의 기운이었지. 그래서 나는 아주 사소한 선택부터 단호하게 바꾸기 시작했다네. 말의 톤을 가다듬고, 필요한 순간에는 서늘할 만큼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
갈등을 무마하려 애쓰기보다 충돌이 생겨도 그 파편 위에서 다시 정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네. 모든 관계가 화기애애할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단절이 가장 깊은 이해의 방식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네.
변화는 고통스러웠으나 방향은 분명했네. 나는 나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과거의 틀에 가두지 않는 냉정한 방식을 찾고 있었지.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예전과는 다른 길이었네.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투명한 감정이 남았다네. 소멸이 있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것이 옳다는 잔잔한 확신이 자리 잡았지. 이 협업이 어떤 종말로 향하든 나는 다시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네.
어둡게 보이던 선택지들 사이에 차갑지만 분명한 빛이 떠 있었네. 그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무너진 터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내적 신뢰에 가까웠지. 이 감각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북극성처럼 나를 이끌고 있네.
나는 이 필연적인 변화를 조용히 품은 채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있다네. 이제 나는 무엇을 베어내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 더 또렷이 느끼고 있었지. 이 협업 속에서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자아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흔들릴 때마다 관계 전체를 붙잡으려 했던 미련을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고 있다네.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즉 나의 말과 선택 그리고 거리만을 단단히 쥐고 있지.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 미덕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네.
진정한 안정은 무조건적인 결합이 아니라 경계를 명확히 베어내는 데서 생긴다는 걸 배우는 중이지.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무겁지만 훨씬 견고하다네. 이렇게 쥐는 힘을 조절하다 보니 관계의 리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네.
너무 밀착하지도,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멀어지지도 않으려 애쓰고 있지. 결정 하나를 서두르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내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네. 이 절제된 거리가 생각보다 많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잠재운다는 걸 알게 되었지.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중심을 잃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 파동을 지켜보며 균형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네. 이 태도가 나를 고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자유를 준다는 점이 놀라웠지. 그 과정에서 나는 이 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지도 분명해졌다네.
보호받고 싶어 매달리는 약자도 아니고 모든 걸 장악하려는 지배자도 아니라는 것 말이네. 책임질 수 있는 범위만을 엄격히 맡고 그 이상은 상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냉철한 태도.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역할처럼 느껴진다네.
구태여 권위를 과시하지 않아도 내 자리가 서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조용히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한 방식이네. 그래서 요즘 나는 관계의 화합을 관리하기보다 자아의 구조를 재건하고 있다네.
감정의 높낮이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미리 정한 원칙 안에서만 움직이려 애쓰고 있지. 이 구조는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라네. 덕분에 예상치 못한 파고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지.
예전 같았으면 상처나 원망으로 번졌을 장면들이 이제는 처리 가능한 명확한 일로 남는다네. 자리를 세워 두니 관계가 나를 침범하지 않고 내 곁을 통과해 흐르는 느낌이 든다네. 이제 남은 것은 이 변화된 태도를 지속하는 일이겠지.
나는 더 이상 이 젊은 남자와의 협업을 통해 과거의 나를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다네. 대신 지금의 나로서 이 냉정한 현실을 다룰 뿐이지. 이 자각이 나에게 묘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네. 누군가 위에 서는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종말과 탄생을 주관할 수 있다는 감각에서 오는 권위 말이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자리를 고요하게 지키고 있다네. 억지로 평화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이제는 제대로 서 있는 듯하네. 이 협업은 더 이상 시험대가 아니라 낡은 자아를 벗어던지고 잠시 머물 수 있는 새로운 거처처럼 느껴진다네.
늘 긴장한 채 서 있던 몸이 자신의 무게를 찾고 마음도 그 위에 엄정하게 내려앉았지. 일하는 공간이 안정이 아닌 '명료함'의 상징이 되자 나는 불필요한 위장을 하나씩 벗어던지게 되었다네. 지켜야 할 원칙이 있으니 굳이 감정의 가면을 쓸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
이 안정은 타인의 동의가 아니라 나의 결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 견고하다네. 그러던 중 스스로에게 분명한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되었어. 이 관계에서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새로 살려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었지.
과거를 투영하던 시선과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던 망상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섰다네. 이 협업은 나의 회고록이 아니라 현재의 냉철한 선택 위에 놓여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지.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서 하나의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네.
이 사람을 내 과거의 그림자로 대하지 않겠다고, 오직 지금의 실체로만 대하겠다고 말이네. 이 판단 이후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네. 무엇을 더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도 줄어들었지.
관계는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서로의 몫을 정확히 분리하는 구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네. 책임의 소재가 서슬 퍼렇게 명확해지자 감정의 부침도 잦아들었지. 공평함이란 마음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정확히 존중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네.
그렇게 나누어진 자리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다네. 이 단절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네. 오히려 모든 걸 섞으려 했던 시절보다 훨씬 단단해졌지. 기대를 잘라내니 실망도 사라졌네.
요구를 명확히 하니 오들도 끼어들 틈이 없다네. 무엇보다 관계라는 미명 아래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크다네. 이제 나는 무엇을 얻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본질을 지키며 이 균형을 지속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네.
그래서 나는 이 흐름을 차분히 이어가려 한다네. 더 이상 화려한 꽃을 피우려 하지도 갑작스러운 화해를 구걸하지도 않으려 하지. 지금의 자리에서 서로의 몫을 지키며 필요한 만큼만 엄격히 주고받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네.
이 관계는 나를 구원하지도 시험하지도 않는다네. 다만 나의 현재를 비정할 만큼 정확히 비추는 거울로 남아 있을 뿐이지. 그 사실이 오히려 내 영혼을 평온하게 한다네. 이렇게 나는 한때의 환상적인 축제 대신, 뼈대만 남은 진실한 균형을 선택한 셈이네.
안정은 합일이 아닌 경계에서 온다.
낡은 자아를 베어낸 자리에만 명료한 진실이 선다.
삶은 소멸을 통한 정진이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