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여든일곱

by 김가희




겸. 요 며칠은 사소한 일들이 유난히 몸에 남는 날들이었네. 봉투 하나를 붙이는 일, 짧은 답장을 적어 내려가는 일, 누군가를 돌보는 작은 손길 같은 것들 말일세.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하루가 저물 무렵이면 어깨가 조용히 내려앉더군. 예전 같으면 예사로 넘겼을 것들이 이제는 하루의 무게로 차곡히 쌓이는 기분이었지.


그렇다고 그 무게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세.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무게를 끝까지 짊어진 뒤에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네. 끝난 일은 끝난 채로 두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지.



돌아보면 나는 종종 종결된 일을 다시 꺼내 들곤 했네. 이미 정리된 문장을 고치고, 지나간 선택을 복기하며 또 다른 의미를 덧칠하려 했지. 그것이 성실함이라 믿었던 적도 있었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이더군.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반드시 책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세.


어떤 일은 그것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를 수용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했네. 더 다듬지 않아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말일세. 나는 그 경계선을 처음으로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네. 그리고 그 인식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볍게 만들어 주더군.



그렇다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건 것은 아니었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고요하게 열려 있다는 감각이 들었지. 누군가 손으로 써서 보낸 짧은 편지 한 통, 어설픈 필치로 그린 그림 한 장, 별것 아닌 짧은 메시지 같은 것들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더군.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잔향이 오래 남았네.


나는 그 신호들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네. 더 크게 이어가지는 않되, 내게 닿아온 만큼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사람의 마음이란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 오래 머무는 법이더군. 아직 그만한 힘은 남아 있다는 것을, 그때 조용히 알았지.



그래서 나는 하루를 조금 다른 결로 갈무리해 보았네. 해야 할 일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지점에서 멈추는 쪽을 택했지. 그 선택이 나태함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네. 이미 충분히 매듭지어진 일들 위에 무언가를 더 얹는 것은 오히려 균형을 무너뜨릴 뿐이었으니까 말이네.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지점을 아는 것. 그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네. 나이가 들수록 그 지점을 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일찍 알아차리고도 멈추지 못하는 것인지 나는 오래 생각해 보았지. 어느 쪽이든 결국은 스스로 선을 긋는 연습이더군. 그 연습이 쉬운 날도, 쉽지 않은 날도 있었네.




그러던 중 사소하지만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일이 하나 생겼네. 크레딧의 표기 방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이었지. 함께 작업한 자리에서 누구의 이름을 어떻게, 어디에 넣을 것인가를 두고 상대의 말 끝에 작은 날이 서기 시작했네. 문제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각자의 자존이 얽혀 있어 자칫 길어질 기미가 보였지.


나는 그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았네. 조금만 더 논리를 펴면 내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네. 오히려 충분히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자리였어. 그러나 그 순간 이상하게도 손이 멈추더군.


이긴 뒤에 남을 장면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었네. 서늘해질 공기, 어딘가 어긋난 채로 남을 관계, 그리고 그 위에 쌓일 불필요한 피로까지도 말이네. 나는 그 소모적인 과정을 끝까지 끌고 갈 이유가 없음을 직감했네. 빈 승리를 쥐는 것보다 불필요한 싸움을 끝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더 어울리는 선택이었지.



내 이름이 어디에 놓이느냐는, 따지고 보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네. 이미 이 기록은 한 권의 책으로 묶였고 그 안에 서린 시간 또한 충분히 견고하게 쌓여 있었지. 지금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일은 오히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스스로 가볍게 만드는 일에 가까웠네. 나는 더 붙잡지 않기로 했지. 이미 증명된 것들을 믿는 쪽을 택했네.


나는 상황을 짧게 정리했네. 표기를 바로잡고 간단한 정정과 함께 말을 마쳤지. 사족을 붙이지 않았고 이유를 길게 늘어놓지도 않았네. 그 선택이 순간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계산을 하지 않기로 했네. 무엇을 더 얻어낼 수 있는가 보다, 무엇을 여기서 끝내야 하는지가 내겐 더 분명했기 때문일세.



그렇게 하나의 소동이 조용히 끝났네. 남아 있는 것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명분도 사라졌네. 관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불필요한 긴장만 걷어낸 듯했지. 나는 그 상태를 확인한 뒤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네. 끝까지 짊어지는 것과 끝난 일을 놓아주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으니까 말이네.


그날 이후로 판단은 훨씬 간결해졌네. 어디까지 발을 내디뎌야 할지 금세 보이더군.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더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졌지. 그 기준이 한 번 세워지고 나니 선택 또한 복잡할 이유가 없었네. 나는 그 흐름을 굳이 거스르지 않았네.



그렇다고 마음이 무채색으로 굳어 버린 것은 아니었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지. 누군가의 말에 짧게 웃고 가벼운 안부에 정답게 화답하는 일들이 다시 편안해졌네. 더 이상 사수해야 할 것을 과하게 부여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세. 그 가벼움이 낯설지 않았네.


모든 관계가 더 깊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상황이 더 진전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어떤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좋은 채로 두어도 괜찮더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네. 그리고 받아들이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한꺼번에 편안해지더군.



결국 남은 것은 단순했네. 이겼느냐 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 명확히 끝났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일이었지. 그 위에 더 이상의 의미를 덧씌우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 이 문제로 나의 시간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결단.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확신이 내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네.


해가 기울 무렵 하루를 돌아보니 마음이 한결 단정해져 있더군. 마침표를 찍은 자리에 다시 글자를 얹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합당한 방식이라 여겼기 때문일세.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으나 이미 종결된 것들까지 다시 끌어오지는 않는 것. 하루는 그렇게 고요히 저물었고, 나는 그 안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네.





관계는 환상을 걷어내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는 예의이며,

충만은 쥐고 있던 것을 가볍게 비워

타인과 나누는 평온이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