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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는 위치의 착각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경험한 흐름을 기준으로 삼는다. 늘 위에 있던 것이 위라고 믿어지고, 자주 성공했던 방식이 옳다고 여겨지며, 오래 유지된 관계 구조가 당연한 형태처럼 굳어진다. 이렇게 익숙함이 누적되면, 인간은 그 배열을 세계의 질서라고 부르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질서는 객관적 구조가 아니라, 한 위치에서 오래 머물며 만들어진 판단의 습관이다.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방식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질서는 언제나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취약하다. 한 발만 옮겨도, 시선이 조금만 뒤집혀도, 위와 아래가 바뀌고 중심과 주변이 전도된다.
문제는 인간이 질서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질서를 의심하는 순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계의 복잡함보다 자기 위치의 불안정성을 더 두려워한다. 결국 인간이 질서를 지키려는 이유는 세계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좌표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질서 정연하지도 혼란스럽지도 않다. 다만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가 될 뿐이다. 질서를 믿는 사람은 구조를 하나의 방향으로만 바라볼 수 있기에, 오직 질서를 의심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세계가 하나의 답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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