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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Feb 26. 2021

식재료 이야기 - 스팸

아질산나트륨 탈출기




  설 명절 전 후 통조림 선물세트 택배 몇 개가 집에 도착했다. 과대포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내용물은 참치와 햄 통조림세트다. 추가령 구조곡에 진도 8.0의 지진이 발생해 수도권 북부가 쑥대밭이 되거나 혹은 백두산 화산이 폭발해 한반도가 패닉에 빠지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동북아 지역의 전쟁 발발로 귀결될 때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과대망상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쓰며 냉장고 위 수납장을 열었다. 거기엔 지난 명절에 받은 통조림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장모님이 사위 걱정에 2년 전 귀촌하시면서 남겨준 꽁치 통조림도 보였다. 오래된 통조림들을 앞쪽으로 밀고 방금 도착한 신선한 통조림들을 뒤쪽으로 넣었다. 재난이 닥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부터 사용해야 한다.


  평화는 행복을 쌓고 통조림을 쌓는다. 올 추석과 내년 설에 들어올 통조림은 앞선 것들을 밀어내지 못하고 다시 뒤로 쌓일 것이다.


평화는 통조림을 쌓는다.  


평화는 스팸을 쌓는다


  평화가 지속되는 한 우리 집 식탁에서 가공육을 먹을 기회는 흔치 않다. 밥상의 최종 결재자인 안주인님께서는 가공식품을 싫어한다. 집에서 스팸을 먹은 기억은 몇 달 전 강원도 횡성 어느 펜션에서 투플러스 한우 채끝등심을 구워 먹은 기억보다 오래됐다. 행위는 반복되면서 단기 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 오래 저장된다. 맛도 그렇다. 희미하게 마주한 두 지점을 사이에 둔 한 때의 맛은 미뢰에 새겨지지 않는다. 그저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경험을 학습하거나 뇌에 한때 스쳤던 희미한 맛의 흔적을 유추해 조작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혼은 나에게 일생의 사랑을 만나 아이와 함께 누리는 행복을 주었지만 스팸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갔다. 스팸은 그램 당 만 오천 원을 호가하는 투플러스 한우 등심보다 귀한 것이다. 평화는 행복을 쌓고 스팸을 쌓고 내 불만을 쌓는다.


명분은 인간이 실행해야 하는 행동에 주는 최소한의 심리적 면죄부가 된다. 비록 그것이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악행일지라도.


  쟁취하는 것들에는 대상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스며있다. 수납장에 기약 없이 쌓여있는 스팸도 마찬가지다. 스팸을 먹기 위해서는 가정의 권력자를 상대로 때론 부드러운 전술을 때론 거친 투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주공화국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허락된 범위 내에서만 정당하다. 그 밖의 경우는 법으로 처벌받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는다. 나는 자유인이지만 내 자유의지만으로는 스팸을 식탁에 올릴 수 없다. 우리 집에서 스팸을 먹을 자유는 전원 합의로 허락된다. 반려견 동동이는 언제나 내편이지만 어린 아들은 엄마 편이다. 성상 전원 합의의 캐스팅보는 언제나 안주인님이 갖고 있다. 유부남의 자유의지는 안주인님의 관용 아래 있다. 비록 그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것일지라도.


  안주인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스팸을 먹어야 하는 명분을 찾아야 한다. 그녀는 물에 잡곡밥을 말아 반찬으로 오이를 쌈장에 찍어먹을지언정 이유 없는 타협은 하지 않는다. 내가 찾아낸 명분은 가공육을 먹는다는 그녀의 죄의식에 최소한의 면죄부를 줄 것이다. 통조림들이 우리 집에 남아있는 것도 '재난상황 대비'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당근 마켓에 나눔 되었을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경우의 수를 짚어본다. 오후 5시 현재 주방에 먹을만한 게 없다. 식사 준비할 시간이 빠듯하지는 않은가. 최근 식단을 되짚어  본다. 짜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스팸이 생각날 때가 되지는 않았는. 수납장을 열어 맨 앞 스팸의 겉면을 빠르게 스캔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하지 않았는가. 슬쩍 미끼들을 던진다. "귀찮은데 오늘 저녁 그냥 스팸 굽거나 김치찌개로 먹을까?" "스팸 얇게 썰어서 밥 싸 먹는 맛 알지? 광고에서 보던 거." "한 달에 한 번쯤은 괜찮잖아." "유통기한 지난 거 버려?" 기승전결 없는 말들을 쏟아내다 보면 하나쯤은 먹히는 날이 있다. 명분을 가장한 무논리적 욕망이 승리한 그날 스팸은 드디어 수납장을 벗어나 세상과 만난다. 남은 통조림들에겐 재난과 명분의 가호가 있기를.



후회의 시간은 비정하다


  안주인님과 스팸 처리 방향을 합의했다. 건강상 아이에겐 주지 않기로 했다. 순수함을 오래 지켜주고 싶은 부모의 욕심이다. 하지만 이미 더럽혀진 몸은 먹을 자격이 있다. 오늘 수납장을 탈출한 스팸은 2017년 묵은지와 함께 김치찌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묵은지 4분의 1 포기에는 200그램짜리 스팸 클래식 한통이 들어간다. 스팸의 원터치 뚜껑을 딴 후 내용물을 흔들어 도마 위에 떨어뜨렸다. 진득한 젤리 물질이 햄 본체에 누덕누덕 붙어 함께 떨어졌다. 유래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첨가물과 지방 범벅인 그것은 안주인님 불호의 근간이자 스팸을 자주 먹을 수 없게 하는 나의 원흉이다. 안주인님의 근심을 더는 작업을 시작한다. 1차로 미지근한 물에 스팸햄의 겉을 깨끗하게 씻고 끓는 물에 한번 데쳐 없앤다. 스팸햄에 들어있는 첨가물들을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안주인님의 먹거리에 대한 부채를 덜기 위한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식용유를 두 바퀴 두른 바닥 넓은 냄비에 설탕 두 스푼 간 마늘 한 스푼, 속을 대강 털고 길게 썬 묵은지를 한데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볶는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냄비 안을 돌다가 상승기류를 타고 스윽 코로 스민 지 3분여 후면 김치의 도톰한 몸통 부분이 반질반질 윤이 나며 익기 시작한다. 이때 냄비 안의 내용물을 한쪽으로 몬 후 빈 공간에 진간장 두 스푼을 넣어 바닥에 눌게 한다. 검은색 간장이 바글바글 끓어 거의 사라질 때쯤 한쪽으로 몰아두었던 볶은 김치를 이용해 간장이 묻은 냄비 바닥을 남김없이 닦아낸다. 간장의 검은색이 김치의 붉은색을 만나 냄비를 검붉게 만들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을 붓고 고춧가루를 조금 추가하면 간장의 검은색은 고추의 붉은색 계열로 흡수 통합될 것이다. 간장의 꼬릿한 향이 김치의 시큼한 향과 섞여 구수하게 침샘을 자극하면 이제 스팸을 넣을 타이밍이라고 보면 된다. 일단 내용물이 잠길만큼의 물을 붓고 전처리 후 알맞게 자른 스팸을 넣는다. 잘린 단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돼지방과 각종 첨가물들이 국물에 감칠맛을 더해 줄 것이다. 한번 끓어오르면 천천히 상온까지 식혔다가 먹기 직전 대파를 어슷 썰어 넣고 다시 끓여 맛의 깊이를 추가한 후 밥상에 올려 먹는다.


  그래 이 맛이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시고 달고 짜서 지속적으로 식욕을 돋우는 맛.  한 그릇을 쓱싹 비벼먹고 다시 밥솥을 열어 주걱으로 꾸욱 밥을 눌러 담아 반 그릇 더 먹는 맛. 김치찌개에 담가진 스팸은 잊었던 맛의 기억을 살려냈다. 조만간 수납장을 다시 열어 오늘의 요리를 반복해 내 이 맛을 꼭 장기기억으로 남기리라. 하지만 내 다짐은 안주인님의 후회가 밀려오자 썰물처럼 사라졌다. "속이 더부룩해" "머리가 아파" "왜 먹었을까", "조금만 참을걸", "오빠 때문이야" 같은 원망의 문장들이 안주인님의 눈빛을 타고 나를 애워쌌다. 속이 더부룩한 것은 과식 탓일 가능성이 높지만 안주인님의 몸은 가공식품 첨가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리적 요인이 더 컸을지라도 와이프의 반응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아예 먹지 않는 편이 옳았다. 경솔함, 미안함을 담은 내 감정의 조각들이 그녀가 밀어낸 후회의 파도를 타고 넘실거렸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그녀가 지키고자 노력해 온 원칙은 가공육과 인스턴트 음식을 식탁에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세속적 욕망에 동조한 그녀와 우리 가족은 오늘 그 원칙을 또 어기고 말았다. 제길슨. 다짐의 시간은 비장하고 후회의 시간은 비정하다.

기존 스팸에서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을 낮춘 제품을 스팸라이트로 판매하고 기존 제품을 스팸클래식으로 구분해 판매하고 있다. 기왕 먹을거면 스팸 클래식이다.



전쟁이 만든 스팸


  동물의 고기는 인간의 식생활에서 뗄 수 없는 필수 식재료이며 인간세를 사는 호모사피엔스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호화로운 단백질 공급원이다. 역사의 일부분은 고기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 고기를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하기 위해 발전했다. 고기 사냥을 위한 도구를 만들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때론 매머드 같은 대형동물을 잡기 위해 서로 협력공동체적 역량을 키웠다. 급기야는 곁에 두고 키우기 쉬운 종을 골라 가축으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고기를 공급하는 목축 기술을 발명했다. 인간은 남은 고기를 소금에 절이고 말리고 발효시키고 훈제하는 방법을 고안해 오래 두고 먹었다. 소시지와 햄 같은 가공 저장육 문화는 섞이지 않은 개별의 문명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날 만큼 보편적이었다.


  20세기 벌어진 두 번의 세계 대전쟁은 고기저장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선의 군인에게 고열량의 고기를 상하지 않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중요했다. 보급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위기에도 늘 답을 찾는 현자가 있기에 인류는 진보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병참장교로 복무했던 제이 호멜은 전쟁 이후 정육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고기통조림이 스팸이었다. 스팸은 진주만 굴욕으로부터 일본에 복수의 칼을 갈던 미군의 훌륭한 전투식량이 되었다. 휴대성 좋고 특별한 조리가 필요 없는 이 통조림은 전장의 군인들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참호 안에서 고열량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했다. 남태평양에서 미군은 스팸을 먹고 연일 일본군을 격파했다. 팸은 육업자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효율적이었다. 팔고 남은 인기 없는 부위의 살을 뼈에서 남김없이 훑어 잘게 갈아 싼 값에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통조림으로 재탄생한 고기는 부패하지 않기 위해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야 했다. 통조림에는 재료 부위를 원형을 알 수 없게 잘게 다져진 고기와 지방, 오랜 기간 보존을 돕기 위한 산화방지제와 색을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발색제, 맛을 좋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품질개량제 등 다양한 첨가물이 함께 갈렸다.


  첨가물의 위험성 평가는 자본과 제국의 논리에 자주 가린다. 전쟁터에 90퍼센트 이상 납품하던 스팸은 전쟁이 끝나자 개발도상국들에 저렴하게 팔렸고 전후 재건이 필요한 나라에 구호품으로 원조되었다. 스팸은 가공육 통조림의 대명사가 되었다. 자극적인 짠맛과 고칼로리를 가진 기름진 가공육에 사람들의 입맛은 빠르게 길들여졌다. 스팸은 건강을 함께 팔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위험보다 눈앞의 쾌락이 더 가까운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스팸은 전쟁보다 위험할까


  김치찌개에 들어간 스팸햄 200그램은 680kcal이다. 하루 필요 영양성분 기준을 2000kcal로 보면 스팸 한통은 삼분의 일 칼로리에 해당한다. 나트륨(1160mg, 108%), 지방(62g, 114%), 포화지방(11g, 146%)등도 하루 권장 치를 훨씬 초과해 들어있다. 전쟁터의 군인은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지만 현대인은 그렇지 않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첨가물이다. 스팸햄의 성분 표시를 보면 주원료인 돼지고기 이외에 폴리인산나트륨, 피로인산나트륨, 메타인산나트륨, 카라기난, 비타민C,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이 첨가물들은 스팸햄에 들어간 돼지고기 부위를 상품성 있게 포장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물질로 의심받고 있다. 정부기관과 식품업체들은 허용치 내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인체를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만들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스팸햄 전성분표시. 돼지고기를 비롯해 다양한 첨가물이 혼합해 들어간다.


  폴리인산나트륨은 '보수제'역할을 하는 풀어쓰자면 고기에 수분을 잘 머금게 해 육질을 좋게 해 주는 식품첨가물이다. 특히 단백질에 잘 작용하기 때문에 육가공식품에는 필수적으로 인다. 폴리인산나트륨을 첨가하면 오래된 연육도 신선한 빛을 낼 수 있고 탱탱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가공육의 품질을 개량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품질이 좋지 않은 부위의 살코기를 품질이 좋은 것처럼 속이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도 된다.


  폴리인산나트륨은 원재료의 품질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도 사라지게 한다. 스팸의 전성분 표시를 보면 돼지고기 함량 자체는 92.44%로 매우 높다. 하지만 괄호 안의 '지방일부사용/외국산:미국, 스페인, 캐나다 등, 국산'이라는 문구가 꺼림칙한 건 나 하나뿐일까. '지방일부'는 몇 퍼센트라는 말인지, 외국산과 국산의 사용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미국과 스페인과 캐나다 중 어떤 산지의 돼지고기가 더 많이 들어갔는지 등에 관한 세세한 사항은 폴리인산나트륨의 품질개량 기능에 가려져 있다.


  피로인산나트륨과 메타인산나트륨 역시 폴리인산나트륨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 첨가물을 혼합해 사용하면 단독으로 사용할 때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육가공식품에서 혼합제제로 사용된다. 또한 이 혼합제제는 산도조절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햄의 보존 효과를 높이고 산화 방지에도 영향을 준다. 스팸햄의 공식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3년이지만 미 개봉시 10년까지도 처음 상태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긴 유통기한은 이 혼합제제 덕분이다.


  카라기난은 유화제다. 유화제는 물과 기름 같은 잘 섞이지 않는 물질을 골고루 섞이기 쉽게 만들어준다. 카라기난이 쓰이는 이유짐작가능하다. 스팸햄의 원재료 및 함량에 보면 <돼지고기 92.44%(지방일부사용/외국산:미국,스페인,캐나다 등, 국산), 정제수>라고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물과 기름 즉 '돼지고기 지방+정제수'조합을 섞어야 하기 때문에 쓰인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군대 생활할 때 카라기난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정기휴가 때 신으려고 며칠 밤 전투화에 물광을 내던 수고로움을 덜었을 것이다. 메리야스를 잘라 검지 손에 둘둘 말아 구두약과 물을 섞어 묻혀 광을 내던 내 청춘이여.


  스팸 첨가물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질산나트륨이다. 아질산나트륨은 균을 억제해 식품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고 육가공품의 붉은색을 선명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식품첨가물이다. 베이컨, 햄 등 식품매장에 진열된 가공육 제품에 쓰이지 않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널리 대중적으로 쓰는 식품 첨가물이다. 극소량의 사용으로도 상품성을 높이고 보존성을 좋게 하며 식중독까지 예방해 주니 식품첨가물계의 일인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점만큼이나 단점이 속속 알려지면서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첨가물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중국 유치원 교사가 원생들의 음식에 아질산나트륨을 다량 풀어 수십 명이 중독되고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 10월에는 우리나라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숨진 어느 청소년의 사망원인이 아질산나트륨 중독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질산나트륨은 고온으로 가열하거나 태울 경우 니트로사민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니트로사민은 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져 있다. 또 아질산나트륨은 허용치 이상 먹을 경우 피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능력을 잃게 만들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상기 열거한 사고의 원인이다. 가공육을 먹었을 때 숨이 가빠지거나 두통이 생긴다면 아질산나트륨에 예민한 체질이 아닌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이 증상이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체중 1kg에 대해 하루 0.06mg 이하를 허용치로 두고 있다. 몸무게 50kg 여성의 경우 하루 허용치는 3.0mg이다. 스팸 200그램 한 캔에는 3.2mg의 아질산나트륨이 들어있다.


EWG 홈페이지에 공개된 스팸클래식 평가표. 점수가 높을수록 우려스러운 제품인데 스팸은 가장 낮은 10점을 받았다.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는 미국의 공신력 있는 비영리 환경시민단체다. 이 단체에서는 Food Score를 매기는데 식품첨가물의 부작용 위험도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해 표시하고 있다. 각 등급은 1. No Concern(위험하지 않음) 2. Lower Concern(저위험) 3. Moderate Concern(중위험) 4. Higher Concern(고위험)이다. 저위험등급까지는 허용할만한 수준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중위험은 호흡기나 피부 염증과 같이 신체적 불편함과 호흡기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때 고위험은 암, 천식 등 치명적인 질환과 내분비계 교란, 발달 문제, 생식 문제를 일으키고 피부에 영구적인 손상을 줄 때 매겨진다. 중위험과 고위험군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게 EWG의 권고사항이다. 그렇다면 스팸에 포함된 식품 첨가물 중 중위험과 고위험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타민C는 무위험군이었고 카라가닌은 저위험군이었다. 하지만 폴리인산나트륨, 피로인산나트륨, 메타인산나트륨은 모두 중위험에 속했고 아질산나트륨은 고위험군에 속했다. 아질산나트륨은 세계 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도 '발암 가능성 있음'으로 분류되고 있는 식품첨가물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스팸을 멀리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아질산나트륨 탈출기


  나의 스팸과 같은 가공육 햄 만들기 도전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내가 만든 수제햄은 스팸과 같이 찰지지도 않았고 조직이 치밀하지도 않았고 부드럽지도 않았다.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음식에 설탕, 소금, 기름 등 맛의 밑재료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빠르고 저렴하게 감칠맛을 내려면 인공조미료 첨가는 거의 필수적이다(나는 쓰지 않는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살아남는 외식업에서 위 재료는 필요악과 같다. 집밥이 맛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외식메뉴에 들어있는 만큼의 설탕, 소금, 기름, 조미료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밥은 외식에 비해 떨어지는 맛만큼 건강으로 채운다. 자만 건강하기만 하고 가족들의 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찰진 식감을 위해 감자전분을 함께 넣어보기도 했고 간 고기를 믹서에 넣고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갈고 따로 돼지지방을 첨가하거나 식물성 기름을 섞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시도는 스팸에 들어간 지방과 첨가물의 효능을 뛰어넘지 못했다. 특히 아질산나트륨을 쓰지 않고는 연분홍색 먹음직스러운 색깔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스팸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는 것일까. 가정에서 스팸을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가공육을 만들어보려고 하는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나중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이유였다. 건강한 가공햄을 아이에게 주고 싶어서 그리고 안주인님의 캐스팅보트의 영향 없이 내 자유의지로 마음껏 스팸 같은 가공햄을 먹고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나는 스팸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가공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팸 맛이 나지 않아도 맛있게 만들어보자. 몇 번의 시행착오로 끝에 아래와 같은 스팸 룩 가공햄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일단 마트에서 신선한 돼지고기 앞다리 분쇄육을 구매한다. 랩 사이로 보이는 살의 색깔이 연분홍색이면 좋다. 경험상 핏빛이 많이 비치는 붉은 부분이 많을수록 냄새가 날 확률이 높다. 난 이번에 650그램을 샀다.


  돼지고기를 스레인레스 볼에 넣고 천일염 5그램, 흑후추, 백후추, 타임 분말, 로즈메리 분말, 파슬리가루를 약간씩 넣고 섞어 밑간을 해 준다. 여기에 올리브 오일 5스푼을 넣어 연육을 돕고 향을 준다.


  섞을 때는 나무주걱으로 하면 편리하다. 손으로 하면 시리기도 할뿐더러 오래 치덕 거리다 보면 고기의 온도가 올라가 신선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한다.

수제햄 제작을 위해 햄 만드는 통을 샀다. 온도계와 누름판이 달려있어 편리하다.

  10센티정도 되는 당근 4분의 일, 마늘 4쪽, 노란색과 빨간색 파프리카 각각 4분의 일, 올리브 오일 2스푼을 믹서에 넣고 갈아준다. 갈림의 정도는 빨간색 파프리카를 보고 판단하는데 굵은 고춧가루와 고운 고춧가루의 중간 정도 크기의 입자가 드문드문 보인다면 적정 수준이다.


   갈린 양념에 계란 한 개를 넣고 잘 섞어준 후 밑간 한 고기에 모두 붓고 한대 섞는다. 나무주걱으로 찰기가 생길 때까지 계속 치덕 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노란색 파프리카와 빨간색 파프리카를 섞어서 쓰는 것 중요하다. 둘은 섞이면서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발색 효과를 내준다. 이것을 넣는 고기는 익혀도 검게 변하지 않는다. 파프리카 특유의 산뜻한 향 고기에 남겨 풍미를 좋게 해 주는데 그 향은 아질산나트륨을 넣은 햄이 주는 훈제향 같은 풍미와 가장 유사하다. 


  20여분을 천천히 잘 섞어 치대다 보면 고기 조직이 녹으면서 찰기가 생겨 서로 잘 엉긴다. 을 씌워 잠시 휴지 시켜 놓은 후 소독해 놓은 스탠 햄 통에 바닥에서부터 위까지 공기 없이 잘 눌러 담아준다. 누름판으로 밀폐시키고 난 후 누름판 위로 약 0.5cm 올라오게 올리브 오일을 부어 상부를 공기와 차단시켜 냉장고에 한나절 숙성시킨다.


완성된 수제햄. 이번에 만든 레시피는 안주인님과 아이의 기호에 잘 맞아 성공적이었다.

  다음날 숙성된 햄 통을 곰솥에 넣고 중탕한다. 오븐에 넣는 방법도 있지만 겉면이 잘 타기 때문에 중탕하는 방법이 더 건강한 햄을 만드는 방법 같아 중탕을 선호한다. 중탕할 때는 펄펄 끓는 물보다는 미지근하게 온도가 올라오는 편이 더 좋다. 찬물부터 서서히 온도를 올려 중탕하면 육질이 쉽게 수축하지 않아 보수력이 좋아진다.  햄 통 중심부에 꽂힌 온도계가 80도를 가리키면 중탕에서 빼낸 후 상온에서 식히다가 미지근해지면 냉장고에서 완전히 식 완성한다.


  식은 햄을 소분해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한다. 조리과정에서 햄 통에 고인 육수를 함께 넣으면 수분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니 버리지 말고 밀폐용기에 함께 담아 보관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썰어서 먹으면 된다. 첨가물 없는 수제햄은 수명이 짧다.하지만 경험상 밀폐 냉장 보관하면 한여름이 아니면 2주일 정도 냉장보관 취식은 문제가 없다. 한번 만들면 2주일 동안 열심히 먹을 수밖에 없다. 안주인님에게는 샐러드로 한 입, 알쏭이 에게는 볶음밥으로 한 입, 반려견 동동이에게는 생으로 한 입. 입에 맞지 않아도 잘 먹어주는 건 가족의 사랑이다.

  

만든 햄은 샐러드에 곁들여먹거나 생것을 잘라 반찬으로 먹는다.




   출근이 늦어 집에 혼자 남은 어느 날 점심 습관처럼 냉장고 위 수납장을 었다. 손대지 않은채 회사 웹 메일함에 쌓여있는 스팸메일처럼 스팸 통조림이 쌓여있다. 스팸메일은 읽히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직행하지만 스팸 통조림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스팸은 재난상황 대비용이라는 표면적 명분으로 가끔 그 맛을 잊지 못해 손이 갈 수밖에 없는 내제적 욕망을 위장한 채 그곳에 있다. 진짜 재난상황은 전쟁이 아니라 스팸이 먹고 싶어 못 견디도록 생각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날 스팸은 어떤 명분을 통해서라도 수납장을 탈출할 것이다. 런데 아직은 재난 상황이 아닌가 보다. 그날 난 스팸 대신 참치 통조림을 꺼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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