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외계인
금성 여자, 화성남자 그리고 토성 고리의 돌멩이
"아빠는 뭐가 제일 무서워?"
저녁식사 전 막간을 이용해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무단시 내게 물었다.
"응 아빠는 엄마가 제일 무서워."
암묵적 동의의 눈빛을 슬쩍 주고받은 부자는 동시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주방 쪽으로 흔들었다. 눈가에 엷게 비친 그녀의 실루엣은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금성 출신 안주인님은 오늘 예민하시다. 그녀는 화성 출신 남자에겐 여러모로 두려운 존재다.
"으헤헤 엄마? 그렇게 무서운 거 말고. 엄청 무서운 거 뭐야?"
"좀비 같은 거?"
"응. 무서운 거."
"글쎄, 엄마 말고는 딱히 없는데?"
"외계인 안 무서워?"
"외계인 무섭지. 엄마도 외계인이잖아. 아마 금성에서 왔을걸?"
잠시 숨을 고르는 아이. 그리고는 비밀을 털어놓듯 내게 말했다.
"나도 사실 외계인이야. 토성의 고리야. 토성 고리 납작한 돌멩이였어. 토성 고리를 돌다가 뿅 하고 날아서 지구로 온 거야."
우리 가족은 지난 일요일 천문대를 다녀왔다.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우주 상영관 의자에 절반쯤 누워 암막 속 천장에 펼쳐진 하늘 별자리를 차근히 눈으로 짚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자기 방 천장에 매달린 태양계 별자리 모빌을 한참 동안 쳐다보곤 했다. 며칠간 얼마나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까. 그 결과 아이는 결국 생전 우주 어딘가의 미물로 지내던 상상을 끄집어냈다. 급작스런 커밍이었다.
"잘 왔어."
"고마워."
우리는 생뚱맞은 하이파이브로 토성 고리 속 티끌 하나가 헬리혜성의 중력에 끌려 나와 지구로 우연히 내던져져 부자의 연을 맺은 확률을 자축했다. 금성에서 온 여인이 곁에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