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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Jan 08. 2021

아빠 이야기 - 내 아이의 등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

  아이와 같이 잘 때면 홍조를 띠고 잠든 얼굴도 좋지만 동그란 등이 참 좋다. 셋이 자는 바람에 좁아진 침대를 조심스럽게 뒤척이고 간신히 옆으로 돌아누워 바라보는 아이의 등은 참 크다. 혹시 깰까 가만히 손을 아이의 어깨에 짚고 등에 내 얼굴을 묻어보면 이토록 포근할 수가 없다.      


  아이 등의 절대적인 크기는 물론 작다. 60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의 어깨 길이와 등의 면적이 얼마나 크고 넓겠는가. 그냥 내 상상에서 비롯된 느낌일 뿐. 그 느낌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가 가질 가능성의 크기와 넓이에서 비롯된다. 나의 상상이 빚어낸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며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릇.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내 아이의 등이다.     


  무한한 크기의 등을 가진 저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신의 영역이기에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자주 상상은 해 본다.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될까. 조용조용히 유유자적하며 따뜻한 햇살을 언제나 누리는 삶을 살까. 세상에 가슴 아픈 일이 없도록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될까. 그도 아니면 끊임없이 샘솟는 에너지로 본인이 가진 이름처럼 시대를 이끄는 리더가 될까. 60개월이 채 안된 나의 아이는 이제 갓 씨앗에서 움튼 새싹처럼 성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     


  식물의 싹이 움트는 과정을 지켜보면 참 경이롭다. 어디서 그 큰 힘이 나왔는지 자기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강도의 껍질을 어렵지 않게 부수고 초록색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깃들어 있던 씨앗 크기의 수십에서 수백 배까지 어렵지 않게 자라난다. ‘크게 자라나기’는 씨앗에서 싹으로 성장하는 모든 생물에게 자연이 내린 본질적 의무다.     


  크게 자라난 씨앗은 시간이 지날수록 운명의 변화를 맞는다. 바람에 넘어지고 때로 너무 많은 물에 몸이 녹는다. 생명의 원천일 줄 알았던 태양빛이 과해 쓰러지기도 한다. 동물이 밟고 지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고 다른 동식물의 자람에 이용되 양분되는 일도 다반사다. 한 가지의 변수가 더할 때마다 씨앗의 싹은 본래 가지고 있던 형질의 성체로 나아갈 기회를 잃는다.      


  나의 아이는 고난의 길을 가는 씨앗처럼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위험요소를 적절하게 제거하고 본인의 몸을 내어서라도 자식에게 줄 양분은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아이가 씨앗과 같을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건 부모의 보살핌으로 아이는 씨앗에 비해 더 많은 가능성을 보장받으며 성체로 성장한다. 성체로 성장한 내 아이의 모습은 앞서 본 나쁜 가능성을 배제한 상상과 같기를 기도해 본다. 그 상상의 원천은 내 아이의 등이다.

     

# 무한한 가능성을 미쳐 펼쳐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간 정인이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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