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물러난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방적 ‘폭력’도 문제이지만 학우들과의 경쟁 기회를 박탈당해 공정성을 상실케 하는 심각한 교육 불평등 사례입니다. 또한 국민이 이번 사건에 더욱 분노하는 건 ‘검사 아들’에게 일방적 언어폭력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고위법률가의 지위를 이용해 ‘법’으로 피해자를 농락하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하게 만든 ‘힘 있는 사람들’의 악질적인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 사회는 권력과 금권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하고 그에 따른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기본적인 사회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든 작금의 불평등 사회구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천착하고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두었는지 국민은 묻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대통령실의 총체적인 인사 검증 실패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지난 2018년에 KBS에 보도가 됐던 것입니다. 공직 예비 후보자 사전 질문지에도 본인,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관계된 민사 행정소송이 있는지 확인하게 돼 있지만 전혀 검증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정 변호사 본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정 변호사는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김만배 씨의 변호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박영수 전 특검을 비롯한 이른바 검사라인 ‘성골’들의 대장동 개입 의혹 실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 변호사가 검찰 출신으로 김만배 씨 변호에 관여했다는 것은 검찰 출신 ‘비리의 저수지’에 그도 발을 담갔을 의혹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장동 사건은 제1야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국가적인 중대 이슈입니다. 대장동 사건의 장본인 김만배 씨 변호를 맡았던 전력으로 어떻게 국가수사본부장으로서 경찰을 지휘할 수 있게 ‘추천’이 된 것인지 그 과정을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특히 정순신 변호사가 검사 시절에 두 차례 징계를 받은 전력과 본인의 군 면제 논란, 장인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조진형 전 의원의 ‘청목회’ 사건(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 로비 사건) 등의 구설수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검증이 통과됐는지도 의문입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점찍은’ 인사였기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왜 이렇게 ‘개인적 결함’과 논란거리가 많은 인물이 버젓이 국가수사본부장에 단수 추천될 수 있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기에는 국가 고위직의 검증 라인에 검찰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사 검증 실패 논란이 계속될 때마다 대통령실은 발을 빼기 일쑤입니다. 이번에도 대통령실은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굉장히 알기 어렵고, 경찰 세평 조사에서도 걸러지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경찰 세평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고위공무원 인사 검증 최종 책임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있습니다. 그런데 두 조직의 수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시원 비서관으로, 모두 윤 대통령의 검찰 시절 최측근 인사들입니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 라인 ‘성골’들이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때 그 아래 인권감독관으로 손발을 맞춘 검찰 출신 인사를 엄중하게 검증할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정 변호사는 한동훈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합니다. 연수원 동기는 2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법률가 시절 중에서 가장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동훈 장관과 검찰이 조국 전 장관에 들이댔던 ‘지독하리만큼 꼼꼼한 법률 잣대’의 10분의 1만 검증하려 했다면, 정순신 변호사가 자신의 흠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버젓이 국가수사본부장에 이력서를 들이밀 수 있었을까요.
검사들은 대체로 ‘패거리 문화’에 익숙합니다. 2000명에 달하는 소수 정예부대이다 보니 그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특권 세습 문화’가 몸에 배 있습니다. 그렇게 끌어당긴 선후배들은 조직의 적폐나 ‘형, 동생’의 비리에 대해 관대하다 못해 초법적인 ‘사함’을 베풀어줍니다. 조직의 생존과 검찰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끼리는 해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관용의 수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니 검사들 비리를 담당하는 감찰 라인은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 되기 일쑤입니다. 검찰의 자정작용이 전무하고 이는 검찰 구성원들을 조직의 기득권 유지만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킵니다.
‘기소 독점주의’라는 칼을 가진 검사들은 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빗나간 특권의식에 빠져 있기 마련입니다. 아들의 언어폭력을 접했던 아버지 정순신은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검사가 하면 다 된다’는 지극히 ‘검사스러운’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다 국민들의 큰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정 변호사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검사인데 검사는 뇌물 받는 직업이다’라고 말한 내용은 ‘검사 집안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이자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정순신 변호사 낙마 사태는 우리 사회에 도사린 학교폭력과 불평등, 고위직 인사 검증 시스템 부재와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등이 뒤얽힌 ‘검사’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인 국정 난맥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의 본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독단적이고 즉흥적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이상, 앞으로 이런 사태는 분명히 재발할 것입니다.
참모들이 올리는 보고서에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낼 때가 다반사이다 보니 아랫사람들이 겁이 나서 ‘소신 있는’ 보고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참모들은 윤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보고서 내고서 ‘욕 들을 만한’ 민감한 사안은 아예 기안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번 정순신 변호사 인선 과정에서도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욕 들을 각오를 하고 ‘검찰편중 인사’ 등의 세평을 여과 없이 전달했거나 단수 추천 과정에서 과감하게 걸러내는 등의 선제대응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대통령 목에 방울을 달기 싫었을 것이고 논란이 예상됨에도 ‘나 몰라라’ 하는 참모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랫사람들의 무책임한 보신주의는 결국 윤 대통령 본인에게로 ‘인사 난맥’ 책임이 다 몰려 버린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집 세고 ‘마이웨이’ 스타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윤석열 대통령 못지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권을 잡기 전까지 ‘정두언’이라는 개혁 성향 소신파 참모를 이인자로 불릴 정도로 가까이 두었습니다. ‘이상득’이라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있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정두언과 이상득으로 세력 균형을 맞추고, ‘여론’에 접점을 맞추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지금 ‘정두언’ 같은 쓴소리 참모들은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자기중심적으로 편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참모들이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하도록 춤추게 만드는 ‘조련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종 고급 정보에 아부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대통령이 참모들의 쓴소리를 들으려 할까요. 주변의 조언과 충정 어린 쓴소리를 멀리하고 경청하지 않으려 작심한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국정운영도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정순신 변호사 낙마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는 자질이 과연 있는지, 국민들이 심각하게 되묻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