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는 마음

by 성기노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지나고 보면 그때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도와주었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분들이 생각난다. 고맙다 못해 문득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분들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한편으론 아직도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부지불식간 머릿속을 때리는,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박찬욱 감독이 충분히 용서의 의미를 탐구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어둡게 똬리를 틀고 있는 분노와 원망의 돌덩어리를 이제 치울 때도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거움을 들어낼 용기가 없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또래보다 한뼘쯤은 더 성숙했고 일찍이 '도'에 눈에 떠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간을 탐구하던 멋진 녀석이었다. 참선하듯 공부를 무지막지하게 했고, 친구놈 앉은 의자가 그의 엉덩이에 달라붙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친구가 장가를 가면서 그의 함을 내가 맸을 때 나는 기분이 좋다 못해 다음에 다시 한번 더 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좋은 대학을 갔고 좋은 외국회사를 다니다 식당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좀 의아하기도 했다. 똑똑했고 능력도 있는 친구였지만 그는 '세속'과 경쟁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절대자'와 싸우느라 진급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임원은 '디폴트'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친구놈이 '세상속으로 내려와' 식당을 하며 돈 버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다소 속물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마저, 그의 '득도'의 지난한 과정이라며 받아들였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친구가 참 좋다. 얼굴 본지 10여년이 될 때쯤 지하철 플랫폼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나는 반갑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그냥 당연하다고 믿었다. 둘이서 벤치에서 몇 시간 넘게 서로의 안부와 '마누라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졌다. 그 후 문득문득 그의 득도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최근 내가 먼저 연락을 했고 경기도에서 식당을 하는 그 친구는 강남에 들를 일이 있다며 내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내가 친구 집에 조만간 가겠다고 했지만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멀리 경기도까지 나를 '부르는' 것보다 자기가 다리품을 파는 게 마음편하다고 생각했다는 걸, 대학 1학기 동안 그와 내 방에서 같이 지내면서 익힌 '식구'의 감으로 알고 있다.


친구는 내게 두 가지를 이야기 했다. 식당에 오는 모든 손님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돈의 팔촌에 위의 몇 대 자손들의 안녕과 행복을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반긴다고 했다. 손님을 메뉴의 가격과 테이블 회전율로 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식건강과 안위를 걱정하니 코로나 때도 매출이 더 늘었다고 했고, 나는 그게 뻥이 아니라 진짜라고 믿었다. 두 번째는 내가 원망하거나 화가 나는 상대가 있다면 그 '타인'을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했다. 상대를 '나'라고 받아들이면 원망을 느끼거나 화를 내지도 않게 될 것이란다. 그렇지. 상대가 나인데 굳이 내가 나에게 화를 내서 뭐하는가. 누워서 침뱉기지.


친구는 폐차 직전의 차를 몰고 다시 자기 식당으로 바람처럼 가버렸다. 돈을 많이 번다는데 차보다 득도를 위한 '수양 아이템'을 사거나 '시주'같은 것을 많이 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대통령도 이기려드는 나라 곳간지기 재정부장관처럼 집안 재정 문제로 '안살림 하는 분'에게 치청구를 들으며 들들 볶일지도 모른다고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어차피 그에게 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고, 중요한 건 '꺾이는 마음'이었겠지. 내가 원망하고 화를 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화를 끼얹고 살아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겠지. 이제 그 원망과 후회의 마음을 꺾을 때가 되었지.


불쑥불쑥 옛날의 나를 책망하며 중년의 심드렁하고 무료한 시간을 '과거'에 집착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옛 친구를 다시 만나 이제 내 머릿속에 눌러붙어있는 후회의 '과거' 딱지를 떼어 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내게 '꺾이는 마음'을 전해준 그 친구가 고맙고, 그립다. 서울 근교에 살지만 또 몇 년 후에나 볼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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