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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28. 2023

윤석열 대통령의 ‘호승심’

지난 2021년 2월 19일 경남 김해시 김수로왕릉 앞 광장에서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유세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전거를 좋아한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 실린 ‘열혈’ 라이더의 인터뷰를 보았다. 고가의 최신 카본 자전거를 소유한 이유에 대해 그는 “어느 날 한강에서 라이딩을 하는데 내 앞으로 자전거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는 걸 싫어해서 그 후에 최신형 경량 자전거로 바꿨다”라고 말했다.


‘샤방 라이더’인 내게 그 ‘이유’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하차감’을 맛보려고 최고급으로 업그레이드 했다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패배와 승리의 그 갈림길에서 유독 ‘호승심’이 충만한 사람들이 있다. 운동선수 중에서도 1등을 한 대부분의 동기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 한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는 걸 싫어해 죽어라 이기려고 평생을 전쟁처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건 병가지상사’라고 애써 위안을 하며 패배의 쓰라림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승리의 짜릿함이나 패배의 쓴맛에 연연해하기보다 ‘병가지상사’로 살아간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독주’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을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언론사뿐 아니라 보수언론도 대통령의 언행이나 불통에 대해 지적을 많이 한다. 대통령이 시중의 이야기를 하도 듣지 않으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사실 최근 들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침체되면서 부쩍 정권에 대한 비판적 기사들이 는 것 같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용산 대통령실은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얼마나 새겨 듣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지지율 추락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대통령실 참모들이 얼버무리긴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4월 26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부르는 노래에 호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집권 1년이 지나도 만나지 않은 것을 마치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노동 연금 교육의 3대 개혁은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그 지난한 과제는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힘들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히면서도 가장 중요한 ‘야당과의 협치’ 실천방안은 쏙 빼고 도대체 어떻게 개혁과제들을 완성하려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워낙 파격을 좋아하다 보니 이러다 혹시 이재명 대표와 전격 ‘영수회담’을 해서 여야 대타협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하며 혼자 순진한 생각도 해보지만, 요령부득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에서 ‘아메리칸 파이’로 바이든 대통령의 물개박수와 ‘어깨동무’를 선물 받았다. 떨지 않고 멋지게 한 소절 노랫가락을 백악관에 퍼뜨린 윤 대통령의 풍류기질이 부럽다.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는 민족의 지도자답다. 그렇게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윤 대통령이 유독 ‘우리 국민’들의 기분을 맞추는 데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각계각층에서 윤 대통령에게 “야당과 대화를 좀 하라”는 요구를 빗발치게 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야당을 ‘사기꾼’이라고 자극하며 화를 돋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의 ‘호승심’도 알아줄 만하다. 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정치’를 방치할 수 있을까. 윤석열 정권만큼 ‘민심’에 귀를 닫은 정권도 없을 것이다.


정치를 게임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오로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정치에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있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승리와 패배를 밥 먹듯이 반복하는 것이 정치다. 한번 이겼다고 해서 패자의 모든 옷을 발가벗겨버리고 전쟁포로 대하듯 함부로 한다면 그 승리가 오래갈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9일 서울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말 없이 악수만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는 패자였지만 다음 선거에서 승자가 될 수도 있다. 야권에서는 “이재명이 집권하면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바로 감옥에 갈 것”이라고 독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이 모든 악순환이 우리 정치의 최대 악습인 승자 독식주의 때문이다. 오로지 선거의 승리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두드려 패는 게임이 아니다. 도전과 응전이 있을 뿐 그 싸움의 ‘끝’은 없다. 하지만 지금 윤 대통령은 야당을 ‘거짓 위장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이기려는 욕망에 충만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지지해주는 국민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심에 조응하며 소통하는 것과 게임에서 지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야권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정책을 바꾸겠다는 것이 ‘정치의 영역’에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겨야 하는 ‘게임의 영역’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잘못이 있어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지기 싫었으면 국민의힘 대변인이 외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말한 ‘주어’도 없다고 우기다가 망신을 당했을까.


윤 대통령이 귀국하면 정치판은 또 ‘방미 성과’를 두고 피 터지는 싸움을 할 것이다. ‘핵 공유’ 여부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이견이 노출된 것이 알려지면서 야당은 총공격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용산으로 초청해 백악관 노래방 ‘점수’ 후일담을 전하면서 ‘적’이 아닌 ‘동업자’를 위해 한 곡조 멋지게 뽑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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