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석 거대 야당을 이끌 더불어민주당 원내사령탑으로 3선 박광온(66·경기 수원시정)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이기는 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통합’을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것은 그만큼 현재 민주당의 역학 구도가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비명계’(비이재명계)의 핵심인 박광온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현재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탈출에 당의 전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이 대표와 함께 총선을 치르는 것은 물론 다음 대선까지 내달릴 태세입니다.
역대 대선에서 ‘차점자’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경우(김영삼 김대중 박근혜(대선후보 경선) 문재인)가 많았다는 ‘학습효과’ 때문에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1600만여 표를 얻은 이재명 대표의 ‘득표력’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친명계’(친이재명계)가 생각하는 원내대표의 역할도 이재명 대권 쟁취의 특급 도우미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명계 핵심그룹인 박홍근 의원이 비명계 박광온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인물 지명도나 통합조정 능력 면에서 박광온 의원이 낫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재명 몰아주기’ 분위기에 힘입어 박홍근 의원이 당선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재수’에 나선 박광온 의원이 다소 파격적으로 당선 깃발을 꽂았습니다. 경선 전 박광온-홍익표(친명계)의 2파전으로 결선투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박 의원이 169명 투표의원 가운데 과반(85표 이상)을 득표해 ‘결승전’ 없이 바로 당선됐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예상을 뒤엎는 의외의 결과에 놀라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박 의원의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과반에서도 10여 표 이상을 더 얻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실상 ‘압도적 승리’인 것입니다. 지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정국 때 ‘당론’을 거스르고 이탈한 의원은 40여 명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사실상 비명계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광온 의원은 비명계 40표에 2배를 훌쩍 넘게 득표를 했습니다. 중립 성향 의원과 친명계 일부 등 40여 명 이상이 비명계 핵심주자에게 투표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투표를 전후해 당 일각에서는 “국민과 당원은 이번 선거를 이재명 대표 신임 투표로 규정한다”(김두관 의원)는 주장도 나온 바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 대표에 대한 ‘불신임’ 의원 숫자가 지난 체포동의안 정국 때 40명에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를 통해서 기존 ‘이재명 유일 체제’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의 싹이 민주당 기저에서 더 확산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친명계에서는 ‘박광온 나비효과’가 이재명 대표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명계 원내대표가 탄생함으로써 친명계는 비상이 걸린 셈입니다.
또한 원내대표는 당 서열 2위로, 당 대표 부재 시 권한대행을 맡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내년 총선 전 사퇴하거나 구속되는 등의 유고 사태가 발생할 경우 박광온 원내대표가 당 대표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은 향후 계파 갈등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당 대표가 강력한 대권주자이긴 하지만 ‘초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박광온 원내대표의 위상과 권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박홍근 전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단점을 커버해 주며 특급 도우미 역할을 했지만 박광온 원내대표에게서 그런 ‘묻지마 지원’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쇄신론자’인 박 원내대표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서 드러난 당의 난맥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광온이 이재명의 통제권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간의 미묘한 권력투쟁이 더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박광온 나비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박광온 원내대표 체제가 이재명 대표에게는 상당한 ‘악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단순한 3선 의원이 아닙니다. 그는 당내 이낙연계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이낙연 전 대표 시절 오른팔에만 주어지는 사무총장직을 역임했으며, 지난 20대 대선 경선에서도 이 전 대표를 열성적으로 도왔습니다.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이낙연’은 보스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와는 정치적 공동체로 묶여 있기 때문에 향후 이재명 대표의 대권행보에 상당히 껄끄러운 장애물일 뿐 아니라 ‘이낙연의 재수’를 위해 그 최선봉에 서서 몸을 던질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 일각에서는 박광온 원내대표 등극에 대해 “이낙연 전 대표의 ‘재 옹립’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짚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박광온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으로 올라서는 비상사태가 올 경우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에 친명계가 수적 우위를 앞세워 ‘비대위 체제’로 반격한다면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계파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광온 원내대표가 당의 상시적 불안 요소가 되는 ‘당 대표 사법 리스크’를 뿌리 뽑기 위해 ‘이재명 2선 후퇴’로 당내 분위기를 몰아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듯 ‘박광온 나비효과’는 일반적인 관측보다 훨씬 그 임팩트가 강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 일각에서는 박광온 원내대표 당선으로 이재명 대표가 ‘계파 통합’이라는 명분을 얻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친명계 일색의 단색 지도부 색깔에 컬러를 더 입혔다는 긍정론도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당직 개편에서 비명계(송갑석 최고위원), 친문계(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를 중용했고, 이낙연계 이개호 의원이 단장을 맡은 공천제도 TF를 통해 ‘공천 룰’도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박 원내대표 당선으로 당직 개편과 공천 룰 정비에 이은 3단계 통합이 완성됐다”고 호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원내대표 또한 “친명과 비명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고,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재명 대표와의 ‘원활한 협조체제’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박광온 체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 기류도 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통합쇄신 능력 강점과 ‘재수생 효과’로 당선된 것일 뿐 이재명 대표를 뿌리째 흔드는 나비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같이 짊어지고 선거 패배의 불 속으로 뛰어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오로지 ‘금배지’ 달 생각밖에 없는 민주당 의원들이 각자도생 당선을 위해 이재명 대표도 기꺼이 버릴 수 있다는 음흉한 전조가 바로 박광온 원내대표의 ‘압도적 승리’로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가 총선 승리의 확신을 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배에서 뛰어내릴 것입니다. 그 탈출을 원활하게 해줄 ‘원내 선장’이 바로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입니다. 박 원내대표가 친명계로 ‘전향’하지 않는 이상 이재명 대표와의 권력투쟁은 필연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