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여부를 두고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8일 중앙윤리위원회는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표면적으로는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떤 징계를 내려도 당사자들이 불복할 경우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8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약 5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결론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두 최고위원이 두 시간 가까이 본인들 입장을 소명했고 징계사유에 대해 논의했다. 사실관계 확인 과정을 위해 이틀 정도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황 위원장은 사실관계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다”면서도 “사실관계를 확정하지 않으면 징계사유와 수위를 정하는데 애로가 있기 때문에 참고 서류를 낸다거나 관련자 진술서를 낸다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명자료를 첨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사자들이 제출한 참고 서류나 관련 진술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당 윤리위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떤 징계를 내려도 최고위원 2명에 대한 일종의 ‘궐위’ 상황이 발생해 최고위원 회의가 반쪽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김기현 대표 체제의 위상과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윤리위도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는 2명이 빠져도 최고위원회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
윤리위 징계는 ‘경고’ ‘당원권 정지’(최장 3년) ‘탈당 권유’ ‘제명’의 단계가 있다. 당 안팎에서는 두 최고위원이 집권여당과 대통령실에 던진 정치적 충격파를 고려해 볼 때 경고 이하의 경징계에 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당과 용산이 휘청거릴 정도의 후폭풍으로 윤리위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고작 경고 정도 주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징계 수위는 경고 다음 단계인 ‘당원권 정지’ 이상의 중징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최고위원 5명 가운데 두 최고위원이 공석으로 되면서 회의 파행이 불가피하다. 당원권 정지 결정이 나올 경우 ‘사고’ 상태로 분류돼 공석으로 최고위가 운영되기 때문에 당 최고의결기구 자체에 대한 불신과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당 일각에서는 차라리 당원권 정지 다음 단계인 탈당 권유나 제명으로 징계를 내려 당사자 2명을 ‘궐위’ 상태로 만들어 전국위원회에서 새로운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김재원 태영호 두 최고위원이 징계를 마치고 복귀한다고 해도 두 사람의 극우적 성향이 김기현 체제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고’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징계를 내린다고 해도 문제는 두 사람이 그 결정에 불복하고 정치적, 법적으로 저항할 경우 당은 상시적인 내홍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준석 전 대표가 자신의 중징계 결정에 맞서 법원에 효력정치가처분신청을 내고 법적 투쟁을 벌여 당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재출범 하는 엄청난 후유증이 재현될 수 있다.
그래서 당 내부에서는 윤리위 중징계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2명을 무조건 설득해서 자진사퇴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묘수’도 등장하고 있다. 두 최고위원에게 사퇴를 ‘권고’해 관철시킨 뒤 징계 수위를 낮춰주는 일종의 ‘딜’을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두 최고위원이 사퇴하면 (징계) 양형에 반영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상할 수 없어 답변하기 어렵지만 만약 정치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그에 따른 징계 수위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두 최고위원이 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사퇴라는 ‘대승적 결단’을 해준다면 당 윤리위도 징계 수위를 낮춰주며 ‘화답’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김재원 태영호 두 최고위원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특히 김재원 최고위원의 경우 3선에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거치며 정치에 잔뼈가 굵은 중진이다. 김 최고위원이 당의 사퇴 권고를 덥석 물어 자진해서 물러난다고 해서 이후 그 어떤 누구도 본인의 정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태영호 최고위원도 ‘4.3 사건’의 김일성 영향력 발언에 대해 윤리위 소명과정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태 최고위원이 자신의 ‘사퇴’를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굽히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 여부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누구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태 최고위원도 “자진 사퇴 입장이었다면 윤리위에 오기 전에 밝혔을 것”이라며 저항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태 최고위원의 경우 총선 공천을 받기 위해 사퇴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기현 대표는 혼자서 속앓이만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연속적으로 최고위원 회의를 취소하며 두 최고위원에게 ‘소심한 압박’을 하고 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대처 방식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 내부에서는 “두 사람은 김기현 대표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과 ‘담판’을 짓고 싶어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에게 징계 수위를 낮춰주도록 확실히 ‘보장’을 해준다면 일단 자진사퇴를 받아들이고 당 내홍을 수습해준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김기현 대표의 무기력한 지도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기현 대표가 최고위원 2명이 촉발한 일련의 사태와 징계 논란 등에 대해 전혀 수습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한다는 것이다. 태 최고위원 녹취록 사건이 터졌을 때 김재원 최고위원 거취와 한 데 묶어 신속하게 엄정한 대처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용산 대통령실도 김 대표의 ‘식물 리더십’에 답답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대표가 할 일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처리해주는 모양새가 되면서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의 징계 논란은 그 수위 등을 정하는 게 본질이 아니다. 애초부터 자격도 되지 않는 인물들이 당 지도부에 입성한 것 자체가 당 지도부 파행의 시작이었다. 결국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대로 여당 지도부를 꾸리려다 초래된 정치적 후폭풍을 이제야 겪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결자해지’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