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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Jun 08. 2023

이재명은 왜 이래경을 ‘지명’했을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6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 혁신위원장 인선 논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혁신위원장에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인선했다가 9시간만에 사퇴한 것과 관련해 계파 간 갈등의 내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래경 사태’로 파문이 확산하자 이재명 대표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 대표”라며 자신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비명계는 이재명 대표를 직격하고 나섰습니다. 이번 혁신위원장 인선의 최종 결정권자인 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갑석 최고위원은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의 전형적인 예가 드러난 것이다. 지도부나 이 대표가 보안 쪽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적어도 조금 더 전에 (논의)해서 생각해 볼 여지를 줬더라면 인사 참사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래경 혁신위원장 카드’는 이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원장 인선을 발표하기 전까지 철저한 보안이 유지돼 최고위원들도 발표 바로 전날 처음 내용을 접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내 여론을 수렴하는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이재명 대표와 일부 계파 실세들이 인선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 했다가 사달이 난 것입니다.


하지만 친명계는 이 대표 사퇴까지 주장하는 비명계의 주장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비명계는 당내 분란이 생기면 무조건 ‘이재명 퇴진’부터 요구하며 대표 쫓아내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인식입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상민 의원 등 비명계가 이 대표 사퇴론을 제기하는 데 대해 “(이상민 의원)본인의 속내가 나온 거라고 본다. 결국 이 대표 사퇴가 본인의 목표여서 당의 쇄신보다는 대표 사퇴를 언급한 것 아니겠나. 당내 단합과 여러 국민들의 어떤 신뢰를 다시 얻어오는 민주당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는 좀 불필요한 발언이라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번 혁신위원장 인선 논란을 두고 “이 대표가 왜 그런 ‘황당한’ 선택을 했을까”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경 이사장은 그동안 누가 봐도 ‘이재명 호위무사’로 인식될 만큼 ‘친 이재명’ 정치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사실 이 이사장의 ‘전력’이라면 ‘이재명 정치특보’가 더 어울림직합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살을 도려내야만’ 하는 혁신위원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치적 상식을 조금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이재명 대표 체제의 혁신위원장 자리에 ‘같은 편’인 이래경 이사장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재명 대표의 이번 정치적 판단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이래경 페이스북 캡처)


당 내부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며 행정능력에는 강점을 보였지만 ‘정치력’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자체장의 행정능력은 야전지휘관 스타일로 좌우돼 아랫사람들을 강하게 몰아세우면 성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강한 추진력보다 뛰어난 경청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본인의 ‘생각’보다 당과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촉수를 드리워야 합니다.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당심을 견인하는 강경파 상위 1%의 분위기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혁신위원장 인선 논란을 계기로 이재명 대표의 ‘정치력’과 ‘공감 능력’에 제대로 의문부호가 붙게 됐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친명계 강경파에 둘러싸여 그들의 주장에 휘둘리다 보니 스스로 정무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래경 이사장의 그간 ‘행적’을 보면 반미.반독재 세계관에 기초한 극단적인 음모론에 경도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인물을 제1야당의 혁신위원장에 ‘내정’한 이 대표의 정무적 판단력도 비상식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내 일부 강경파들의 ‘비상식적인 조언’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보궐선거로 당의 수장에 오른 뒤부터 ‘사법 리스크’라는 숙명적인 한계 때문에 자신의 특장점인 강력한 카리스마와 사이다 추진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친명계 강경파들은 이 대표가 여의도 1년의 ‘정치 초짜’ 경력에 비하면 지금까지 당을 잘 이끌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거에서의 ‘득표력’은 야권의 ‘원톱’이라고 봅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진영 대권주자로 역대 최다인 1600만표가 넘는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친명계들은 ‘이재명’이라는 훌륭한 정치적 자산을 잘 만들어 나가면 반드시 대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집단 최면’을 강력하게 걸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대표가 불굴의 권력의지와 강한 인내심 등 대권주자가 갖춰야 할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믿음도 깔려 있습니다.


친명계 강경파들은 체포동의안 정국과 개딸 논란 등을 거치면서도 ‘이재명 외 일체의 대안은 없다’며 강경대응 일변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내년 총선 전까지 절대로 이 대표가 물러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견과 저항이 있어도 이재명으로 ‘죽을 때까지’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명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재명 체제는 무너지기 때문에 그 어떤 타협과 양보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강경파의 비타협 노선을 두고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가 ’윤석열 당 장악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적극 개입 등으로 국민의힘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운데)와 박광온 원내대표(오른쪽), 정청래 최고위원(왼쪽)이 지난 6월 5일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무 개입’ 등의 비판과 비주류의 저항도 있었지만 끝내 ‘윤석열 사당화’를 완결시켰고 여당은 대통령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과 부담이 엄청나게 컸지만 당을 컨트롤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그리 나쁜 장사는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또한 개딸과 대의원제 폐지 논란 등을 거치며 비명계의 크나큰 저항에 직면하고 있지만 ‘정면돌파’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혁신위원장 사태도 ‘당 장악 플랜’의 일관된 강경대응 기조가 낳은 불행한 사건일 뿐 앞으로도 그런 비타협 강경노선은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윤석열 당 장악 모델’이 먹혀들고 있다는 것을 여의도에서 체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윤석열과 이재명의 당 장악 모델은 다릅니다. 윤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여당을 장악하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불가항력적으로 끌려가는 측면이 강합니다.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협조해야 한다는 ‘당대 일체’의 보수정당 전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경우 힘으로만 밀어붙여 당을 장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비명계의 저항도 있지만 무엇보다 ‘민심’의 거부감과 저항마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야 국정운영이라는 명분으로 ‘지지율’을 무시하고 일방독주할 수 있지만 야당 대표는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민심과 괴리된 야당은 자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당 장악 모델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신인임에도 대권에 오른 성공 경험이 있고 이 대표 또한 성남시장에서 출발해 제1야당 대선후보로까지 올라 대선에서도 ‘0.73%’라는 역대 최소 격차로 아깝게 패한 ‘절반의 성공’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일개’ 시장에서 제1야당의 대선후보와 대표로까지 신분이 수직상승하면서 자신만의 권력 컨트롤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강한 자신감과 자기애는 이 대표를 지탱하는 원천적인 힘입니다. 하지만 이런 힘은 불행하게도 정치적 탐욕과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쳐질 때가 많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절반의 성공’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민주당도 사당화 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확신의 덫’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그런 탐욕과 오판이 ‘내 편’을 혁신위원장 자리에 버젓이 앉힌 결정적 동인이 됐습니다. 이번 혁신위원장 인선 논란에서 이 대표가 가장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그동안 용케 숨겨온 ‘선사후당’의 발톱을 들켜버린 것입니다. 자기희생보다도 더 강력한 리더십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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