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회심의 한 수를 날렸습니다. 이 대표는 6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전격 선언했습니다.
이 대표의 불체포권리 포기 선언은 극적 효과를 위해 깜짝 발표됐습니다. 불체포권리 포기 내용은 언론에 배포된 사전 연설문에는 없던 내용으로 이 대표가 연설 말미에 갑자기 터뜨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본회의 직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만 이 대표의 깜짝 발표가 공유되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대표가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절박함이 있습니다. 대표 취임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만성적인 ‘사법 리스크’와 권위가 추락한 리더십 등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그로서는 극적인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받아들이는 여론은 유동적입니다. 민주당에서야 비명계(비 이재명)들도 환영을 하는 분위기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당대표로서 당연한 결정을 한 것인데 마치 자신이 큰 희생을 하는 것처럼 본희의장에서 깜짝 발표한 것은 그 정치적 저의를 의심받는 정략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 대표가 자신의 불체포특권 포기마저도 민주당의 윤리의식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흔들리는 리더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의 몇 차례 소환조사를 통해 검찰의 ‘패’를 어느 정도 읽었고 그 결과 구속영장이 청구되더라도 한번 붙어볼 만하다는 법리적 계산이 들어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장동 사건 등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에서 검찰이 결정적인 ‘스모킹 건’을 제시하지 못하자 ‘법대로’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무리해서 의원들을 동원해 체포동의안 부결을 억지로 밀어붙여 여론전에서 밀리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차라리 법리전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부정적 여론의 확산을 막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특히 불체포특권 포기 발언이 민주당 혁신을 강조하는 대목 직후에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대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직을 완전 틀어쥐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재명 리더십’에 희미하게 깔려 있는 불신의 안개를 이번 혁신위를 통해 말끔히 걷어내겠다는 의욕에 차 있습니다.
혁신위를 살리는 길이 곧 자신이 사는 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혁신위가 ‘이재명만 빼고’ 당 쇄신을 추진할 경우 총력 지원할 태세입니다. 그래서 혁신위 출범 과정에서 그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쇄신의 공간을 더 열어주기 위해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라는 자신의 최대 방어 카드마저 흔쾌히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 대표의 ‘자기희생’으로 혁신위는 앞으로 보다 과감하고 중도지향적인 당 쇄신을 추진할 명분과 동력을 얻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김은경 혁신위원장 사이에 ‘상호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이 ‘돈 봉투 사건은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라는 자기희생의 한 날개와 혁신위 쇄신이라는 또 다른 날개로 내년 총선에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에 불체포특권 포기 결단을 내린 배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사법 리스크’로 비명계로부터 지속적인 퇴진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이후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 논란, 싱하이밍 중국 대사 막말 ‘들러리’ 논란 등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으면서 비명계뿐 아니라 중립 성향의 의원들마저 불신을 가지고 ‘차기 대권 강철대오’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지난 2월 말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때의 당 결속력에 비해 지금은 그 점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계속 의원들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밀어 넣기에는 명분도 약하고 한계에 다다랐다는 인식이 이번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으로 나타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자신의 불안한 당내 입지와 리더십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음모론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이 대표가 ‘체포 방탄’을 벗어던진 것은 일종의 ‘위장전술’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한다고 해도 체포동의안이 송부되면 헌법 상 국회 본회의 표결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법적인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통과시켜 주세요’라고 선언해도 민주당 의원들이 부표를 던져버리면 이 대표는 ‘자동 방탄’이 됩니다.
물론 권성동 의원의 예처럼 회기를 연기시키고 법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실질적으로 유효하려면 이 대표가 여야에 국회를 열지 않도록 단속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힘이라는 ‘적’이 있기 때문에 이 대표의 뜻대로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무리하게 이 대표를 ‘구속’까지 가도록 국회를 열지 않거나 국회를 열어 대거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대표가 이번에 ‘자기희생’을 하며 모범을 보였으니 의원들이 더 지켜줘야 한다는 동정론이 일어 이 대표 본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방탄 국회’를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7월이 비회기이긴 하지만 현재 민주당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청문회 등을 위해 임시국회를 열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지키기’로 체포동의안에 대거 부표를 던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고 찬성을 하는 의원들이 오히려 민주당의 결속력을 저해하는 세력이라며 역공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시나리오가 완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대표와 ‘친명계’가 총선 공천을 강력한 연결고리로 ‘불체포 포기’와 ‘체포안 부결’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결과적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까지 ‘죽어도’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을 재탈환해야 한다는 친명계의 교조적인 집착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카드를 던진 것이 자신감의 표출인지, 아니면 불안함의 반영인지 지금으로선 예단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대표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야당의 수장으로서 결단(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증후군에 비하면 미약하지만)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감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이재명도 할 수 있다’라는 시그널을 준 점은 긍정적입니다.
반면 맨 처음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송부되었을 때 전격적으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당을 위해 희생하는 ‘등신불의 정치’를 했다면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시지탄입니다. 상황을 이리저리 관망하다가 뒤늦게 포기 선언을 한 것은 오히려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리더십을 방어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내놓은 고육지책이자 ‘방탄 유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재명의 승부수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과 민주당을 위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때 제대로 먹혀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