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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Oct 24. 2023

‘사과와 반성’ 윤석열 대통령, 과연 달라졌을까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0월 21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참으로 의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사과와 반성의 수사를 쏟아내는 것이. 그동안 윤 대통령은 ‘이념’이라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누가 뭐래도 내 갈 길 간다’며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 윤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크게 느낀 바가 있었는지 민생과 현장 소통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 급선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진보 언론인들마저 ‘대통령이 달라졌어요’라고 반기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의 말은 국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며 이번 ‘반성’을 큰 폭의 방향 전환을 하는 예고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성한용).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윤 대통령이 그간 견지해 온 국정과 이념의 ‘물아일체’를 벗어던지고 급 태세 전환을 하는 것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윤 대통령의 ‘급변침’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깜짝 선회’일 뿐 그동안의 ‘일방 독주 리더십’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난 ‘행적’을 보면 이번 사과와 반성이 왜 ‘순간 모면’의 가능성이 있는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2월 17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서 김건희 여사의 ‘허위 경력’ 등의 논란과 관련해 “과거 제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과 잣대는 저와 제 가족, 제 주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하지만 윤 후보의 공개 사과 표명에도 김 여사의 허위 경력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국민의힘 선대위에서는 “허위 이력·경력 논란에 대한 사과뿐 아니라 국민이 윤 후보와 배우자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김 여사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방안도 책임 라인에 보고 됐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깊었습니다. 


2021년 12월 17일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김 여사는 윤 후보의 사과가 있고 10여 일 후인 12월 27일 거듭 쏟아지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선 뒤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울먹였습니다. 


하지만 김 여사의 이런 ‘아내 역할 충실’ 약속은 결과적으로 ‘식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사과도 빛이 바랬습니다. 현재 야권에서는 “김 여사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해놓고 역대 그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김 여사가 그렇게 ‘영부인’ 역할을 활발하게 하고 싶으면 과거에 했던 ‘아내 역할에만 충실’ 약속의 ‘번복’에 대해 국민들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라는 의견도 쏟아집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부부의 사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모른 척 입을 꾹 닫고 있습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에 대해 자신이 돌보지 못하는 민생현장을 대신 ‘커버’해 줘서 감사하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일 정도로 아내의 ‘외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부부가 연이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어느새 ‘없던 일’이 돼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정국에서 김 여사 논란과 관련해 ‘사과’했지만 집권 후 마음이 달라진 것처럼 이번 보궐선거 참패 후의 사과와 반성도 선거 패배 책임론을 얼버무리기 위한, 순간 모면의 ‘위장막’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 선회 배경은 ‘정치적 이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과와 겸손 모드로 돌변한 것이 ‘내년 총선의 공천 지분을 지키기 위한 방어 작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2021년 12월 26일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윤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찌 보면 총선은 대선보다도 더 중요한 정치 이벤트입니다. 대권주자가 대선에서 패배하면 혼자 조용히 짐을 싸야 하지만 국회의원의 ‘금배지’는 멀쩡합니다. 총선은 국민의힘 의원 111명의 명운뿐 아니라 공천 희망자들의 정치생명까지 걸린,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 절체절명의 한판입니다.


총선장이 서면 당내 계파들은 목숨을 걸고 공천권을 따내려 하고 이 과정에서 보수언론과 장외의 보수 세력들도 자신들의 ‘국회의원 지분’을 챙기기 위해 공천 경쟁에 뛰어듭니다. 지금으로선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가장 막강한 공천 권력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 패배로 윤 대통령 공천 지분 상당 부분이 날아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치신인 ‘윤석열 대선 승리 신화’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고 ‘윤 대통령의 깃발을 들었다가 수도권에서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커짐에 따라 수도권 공천은 대통령 마음대로 자기 사람을 꽂을 상황이 못 됩니다. 윤 대통령은 올해 3월 전당대회 ‘개입’ 때 권력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후 보궐선거 참패로 여당에서의 위상과 권력의 그립은 상당 부분 약해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사과와 반성은 당내 퍼지는 위기감과 그에 따른 반발을 ‘일단’ 잠재우고,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그 책임의 독박을 혼자 지지 않으려는 나름의 ‘정치적 도피처’ 구축과 ‘면피’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이념을 멀리하고 민생과 소통에 올인해도 민심은 야당을 택했다’는 최소한의 변명을 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달라졌느냐의 여부와 그 ‘진정성’을 검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대선정국에서 김건희 여사 논란 사과 때처럼 말로만 백번 반성한다고 해놓고 대통령 자신이 안 변하면 그만입니다. 그것보다는 윤 대통령이 국가의 기본 철학이자 방향성이라며 신줏단지 모시듯 ‘제일로’ 떠받들던 이념이 왜 며칠 사이에 하늘로 증발해 버렸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에 왜 민생과 현장이 갑자기 들어섰는지, 그 ‘급선회’의 배경과 과정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우디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대통령과 김 여사가 10월 21일 킹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 모하마드 빈 압둘라만 빈 압둘아지즈 부주지사와 접견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은 ‘불철주야’ 이념만 강조하다가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대통령실 수석들에게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한때 여권에서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은 국가가 추구하는 철학과 방향성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이제 이념은 사실상 내팽개쳐진 셈입니다.


이렇게 단 며칠 사이에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철학과 방향성이 이념에서 민생 또는 다른 어떤 애매모호한 ‘가치’로 갑자기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그 어떤 충분한 설명을 하거나 이해도 구하지 않고 참모의 ‘입’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만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현장 강조 또한 ‘좋은 말’만 영혼까지 끌어모으려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는 행정, 보고서로 밤새는 행정”을 했던 참모들이 갑자기 현장으로 달려간다고 해서 ‘민생고’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몸에 체득한 중요한 소신이자 원칙이 ‘현장’이라면 왜 대통령부터 용산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여의도 현장’의 민주당 의원들을 붙잡고 민생 이야기는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이 왜 갑자기 그 중요한 국정운영의 방향마저 바꾸고 뜬금없이 사과와 반성을 하는지’ 그 속사정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이념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왜 이제 민생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방향’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이념과 민생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근거가 생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턱대고 사과부터 하고 나서 국민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편안하게 보궐선거 패배의 위안을 삼는다면, 그는 달라진 것이 아니라 달라진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 부부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영부인의 대통령급 활동’을 보면서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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