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기노 Oct 27. 2023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침번’인가?

10월 23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로비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의도에 ‘벽안의 외국인’이 등장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자신이 물러나는 대신 ‘개혁의 대리인’으로 인요한(영어명 John Linton) 혁신위원장을 내세웠다. 그런데 한국말도 잘 못 할 것 같은(전남 순천 토박이(출생은 전주)인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기가 막히게 쓴다고 한다) 외국인이 갑자기 왜 정치판에 나타났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치 구력’은 초급이 아니다. 그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당선 이후 대통령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여의도 정치판을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그 후에도 보수정당의 혁신위원장 하마평에도 자주 올랐을 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고,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인요한 위원장이 처음 등장하자 어떤 지인은 “미군정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를 이번에 정치적으로 더 잘 키워서 주미 한국 대사로 역수출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온다. 이런 반응의 기저에는 “이제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외국인까지 끌어들여 혁신을 차별화하려 하느냐”는 국민의힘 ‘꼼수’에 대한 불신과 조롱도 깔려 있다.


사실 인 위원장이 고민 고민해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 혁신위원들인데 반응이 영 시원찮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볼거리’가 하나도 없다고 모두들 수군거린다. 당 내부에서도 “‘비윤계’(비 윤석열)가 한 명도 없는 게 실화냐”며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혁신위원회’인데 튀는 색깔 하나 정도는 넣어야 하는데 전부 ‘용산스럽다’는 것이다. 출발부터 이러니 앞으로 내놓은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라는 반응이 넘쳐 난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하늘 아래 새 인물이 있느냐”며 “좀 기다려보자”며 판단을 유보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지금까지 정치가 우리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준 적이 없는데 너무 기대하지 말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0월 25일 오전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난망한 기대에 얹혀 앞으로의 전망 또한 어두워서 그런지 첫날 회의도 하기 전부터 혁신위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다 못한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훈수를 둔다. 눈에 띄는 게 ‘전권을 쟁취하라’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권 운운하는데 전권은 당대표가 부여하는 게 아니라 혁신위원장이 쟁취하는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홍 시장은 2017년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류석춘 혁신위원장 체제를 직접 ‘상대’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인요한 위원장의 상황을 잘 알 것이다.


전권 쟁취의 구체적 방법을 알려주는 전문가도 있다. 정치평론가 윤태곤은 “이제부터 인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당과 대통령실을 향해 고함지르고, 강권해야 한다. 그래도 안 통하면 ‘내 말 안 들으면 병원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거 안 하면 그만이지만 당신들은 다 죽는다’고 협박해야 한다”고 컨설팅을 한다. 도통 움직이지 않는 ‘여의도 영감님’들을 윽박지르고 몰아세워야 그나마 없던 전권도 생겨 성공할까 말까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윽박지르고, 협박한다고 들어 먹힐 ‘혁신’이었으면 왜 진작 성공한 사례가 없었을까. 정치판을 보면 볼수록 비관적이 되는 것은 정치가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대로 이뤄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그 불행한 경험칙이 여전히 여의도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은경이 민주당 혁신한다고 가서 ‘이뤄준’ 것이 뭔지 기억하는 국민들이 있을까. 민주당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는 강고한 기득권 집단 ‘국민의힘’에서 가죽을 벗기는 가공할 힘을 ‘외국인’에게 선뜻 건네줄까. 또한 요행히 메스를 건네받는다고 해도 인 위원장이 ‘집도’를 잘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일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인 위원장의 ‘정치 내공’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낙동강 하류 세력 배제’ 발언과 관련해서는 인 위원장이 농담으로 포장했지만 말에 뼈가 있다. 정치적 언어를 잘 구사한다”며 “인 위원장이 리더십을 가져가면 혁신위원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만고만한’ 혁신위원들보다 ‘일당백’인 인 위원장이 판을 한번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0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김기현 대표와 면담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혁신위원들이 전권 쟁취를 위해 투사로 변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마음대로 한번 휘젓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몰라서 길바닥에 드러누울 수도 없다. 최소한의 ‘다양성’ 흉내도 내지 않은 혁신위원 명단을 보고 애당초 기대를 접었지만, 눈길이 가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박성중 의원(재선.서울 서초을)이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는 대선 이후 대표적인 ‘친윤계’(친 윤석열)로 활동중이다. 다음 등의 포털에서 ‘윤석열’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검색되거나 긍정적 내용이 자주 노출되지 않는다는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는 그는 ‘포털의 윤석열 수호천사’로 불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그는 지난 5월 “포털에 ‘윤석열’을 검색한 걸 근거로 포털 언론 환경이 온통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기사’에 점령당했다. 언론이 편파적이니 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이 편파적인 검색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들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박수를 칠 정도로 좋아하겠지만 국민들이 박성중 의원의 ‘주장’에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이다. 이런 박 의원을 혁신위원으로 ‘임명’한 것은 ‘용산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는 일종의 ‘알박기’로 비쳐진다. 이는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 체제 때 이재명 대표의 ‘대선후보 수행실장’을 역임했던 이해식 의원을 ‘알박기’로 심은 것과 유사한 포지션이다.


어차피 혁신위원들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지 않겠지만 혹시나 ‘분위기에 미쳐서’ 전권을 달라고 ‘생떼’를 심하게 부리거나 ‘용산 윤석열’을 직격하며 분위기를 흐리려 할 때 ‘알박기’로 심어둔 인물에게 그런 시도를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원려’는 아닐까.


독립유공자이자 한국 린튼 가문의 시조 윌리엄 린튼(인돈).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친할아버지다. (사진=연합뉴스)


인요한 혁신위가 어떤 ‘가죽’을 벗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의사인 인요한 위원장은 “쓴 약을, 꼭 먹어야 할 약을 조제해서 바른 길을 찾아가겠다”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먹기 싫다면 억지로 떠먹일 수도 없는데, 그래도 일단 약을 만들겠다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인 위원장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뒤에 어른거리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에게 더 눈길이 간다. 인요한 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자 그와 친분이 깊은 김한길 위원장이 혁신위에 ‘꽂았다’는 말들이 즉각 나왔다. 인 위원장은 2019년 김 위원장과 그의 아내 배우 최명길씨가 진행했던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지난해엔 국민통합위 유튜브에서 김 위원장과 대담을 하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김한길 위원장과 친분이 있느냐’는 한 언론의 질문에 “김한길 위원장과는 몇년 전 (방송 프로그램) ‘길길이 산다’에 사모님(최명길)과 같이 출연해서 엄청 친한 사이다. 평소에도 전화를 매일 한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의 ‘천기누설’에 화들짝 놀랐는지, 김한길 위원장은 “4~5년 사이에 4~5차례 안부전화를 주고받은 게 전부다”며 매일 전화를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럴 때 정치 신인 티가 난다. 인 위원장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서 매일 전화하는 사이라고 해버리면 그의 뒤에 어른거리는 김한길의 그림자가 더 뚜렷해지는 것을 몰랐든지, 아니면 ‘감투’에 업이 돼 ‘질러버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친한’ 건 확실해진 것 같다. ‘노회한’ 김한길이 즉각 부인을 하니 더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진외증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가 아내 로티, 아들 헨리, 딸 살럿과 함께 1901년 전남 목포 집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유진벨재단 제공)


김한길이 누구인가. ‘윤석열의 숨겨진 남자’ 아닌가. 윤 대통령은 10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 김기현 대표와 당 지도부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김한길 위원장을 한껏 띄웠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집합’을 두고 윤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와 당 지도부에게 “앞으로 김한길 말 잘 들어라”고 ‘명령’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쯤에서 ‘예상 가능한’ 정치 수 하나만 그려보고자 한다. 윤 대통령이 보궐선거 참패를 수습하고 ‘분당 창당 전문가’인 김한길 위원장을 내세워 ‘윤석열 신당’으로 내년 총선을 돌파해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 여부를 확신하지 못해 ‘인요한 혁신위원장’ 체제를 띄워 그 가능성을 먼저 가늠해보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혁신위원장은 ‘윤석열-김한길 수직체계’가 직통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인물이 전제돼야 한다. 김한길의 ‘아바타’인 인요한이 적임자로 떠올랐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한길 위원장이 보궐선거 참패로 깜짝 놀라 실의에 찬 윤석열 대통령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저만 믿으세요’라고 안심시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윤 대통령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도록 인요한을 불침번으로 앉혀 놓은 것은 아닐까.


마침 1895년 구한말 시절 한국에 선교사로 온 린튼 가족 중 인요한의 진외증조부인 유진 벨(인 위원장 친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인돈)의 장인)은 고종의 불침번을 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래저래 린튼 가문의 한국 인연은 대를 이어 오묘하게 계속되고 있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사상 최초의 ‘외국인 혁신위원장’이 지은 보약을 꿀꺽 삼키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사과와 반성’ 윤석열 대통령, 과연 달라졌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