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모드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여야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공방에서 윤 대통령의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개입’ 의혹에 따른 탄핵 여부로 전장을 옮겨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언론에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던 김건희 여사의 김영선 공천 개입 의혹 관련 보도를 묵묵히 지켜보다가 지난 10월 31일 윤 대통령이 명태균씨에게 김 전 의원 공천을 언급하는 통화 음성 파일을 전격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탄핵 전투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명씨와 연락을 끊었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는 민주당의 음성 파일이 공개되자 당혹해하면서 ‘깔아뭉개기’와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들킨 건 들킨 것이고 쌩 까고 버텨보자’는 단순무식 전략 외에 이렇다 할 정무 대응책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중에 떠돌던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 대통령 육성 한방에 ‘빼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먹구름이 용산 대통령실 꼭대기까지 왔음에도 정진석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 답변에서 “유럽도 지지율 20% 넘기는 정상 많지 않다”며 안드로메다를 능가하는 우주적 뻔뻔함을 시전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국민들이 돌을 던질 만한 곳에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 국회 시정연설도 11년만에 국무총리에게 대신 읽게 하고 집무실에 틀어박혀 해외순방 날짜만 세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용산 벙커 장기항전’ 모드로 들어간 만큼 이제부터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순’이 매우 중요해졌다. 대통령을 억지로 벙커에서 끌어내지 않는 이상, 그가 두 발로 순순히 걸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바둑에서 아무리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수순을 대충해버리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수순이 중요한 이유는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판세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패색이 짙은 경기라고 해도 상대 역시 내 공격을 비켜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상대방의 대응을 여러 가지 상정해놓고 그에 따른 수순을 미리 정해놓지 않으면 막판에 거대한 돌발변수에 패퇴할 수도 있다. 지금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이 앉아서 국회의 탄핵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착각과 자만심에 빠질 수 있지만 현직 대통령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타개할 계책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이 권력의 힘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절반만 떼 준다는 건곤일척 승부수를 던질 경우 ‘닭 쫓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윤 대통령 벙커 주변에는 상명하복의 방대한 검찰 조직과 사법부 우호세력, 그리고 ‘탄핵 2연타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층의 마지막 자존심 등의 막강한 방벽이 둘러쳐져 있다. 이 대표가 막연하게 ‘지지율이 20%대 아래로 떨어졌고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으니 이쯤에서 승부를 끝장내자’고 덤빌 경우 ‘거사’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일단 윤 대통령을 중도에 끌어내릴 만한 ‘스모킹건’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일반인’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가 청와대를 자기 마음대로 출입하고 대통령 연설문에도 손을 대는 등의 구체적인 ‘태블릿’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고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박근혜=최순실’의 등식이 ‘윤석열=김건희’ 또는 ‘윤석열=명태균’이라는 등식과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출되지 않는 ‘어둠의 권력’에 대한 실체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더욱이 국민들은 ‘박근혜 탄핵’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효과가 돼 있기 때문에 탄핵의 커트라인은 더욱 엄중해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지금 아무리 무능력하고 뻔뻔한 국정 운영을 보여주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것에 분노하는 ‘감정선’과 현직 대통령을 또 다시 탄핵해야 하는 ‘이성선’을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 한다. 한번 탄핵의 희열과 열정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2번째의 탄핵 강도는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를 완전히 2선 또는 ‘유배지’로 보내 정국에서 사라지게 하고 자신도 거국중립내각 수준의 타개책을 내놓을 경우 국민들의 분노와 원망도 급격하게 식어버릴 수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미 탄핵의 에너지를 한번 완전히 소진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충전하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전압’도 더 올려야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탄핵’ 대응 수순을 보면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냉온탕을 오가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1월 2일 서울역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다.
이날 이 대표는 “2016년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정권을 질타하는 연설을 했을 땐 성남시장, 변방의 장수여서 자유롭게 말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 대표라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하며 몸을 사렸다. 이런 이 대표의 어정쩡한 태도와 대응은 겸손과 절제가 아니라 ‘탄핵’과 ‘임기단축 개헌’이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 ‘내 입맛대로 고르겠다’는 권력자의 오만이 더 드러난다는 의견도 있다.
아직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에 대한 결정적 스모킹건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섣불리 장외집회에 참석했고 그날 연설도 이도 저도 아닌 ‘걸치기’였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물이 끓지도 않는데 라면부터 넣어버리는 성급함과 조급함을 드러낸다면 국민들도 야당대표를 신뢰할 수 없다. 차라리 집회에 참석하지 않거나 아예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국민에 등 떠밀려’ 나오는 상황까지 최대한 자제하고 기다리는 ‘수순’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대표는 ‘장기전’에 들어간 윤 대통령을 끌어내기 위해 더 주도면밀한 기획과 적확한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여기에 여전히 이재명 사법리스도 살아 움직이는 변수다. 바둑의 ‘아생 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격언도 아군의 진지를 우선 견고하게 해놓지 않으면 언제든 적 후방 공격에 무너질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이 0.73% 차이로 거머쥔 권력을 그의 손아귀에서 뺏어오려고 하는 중이다. 상대가 지금 지지율 하락과 측근들의 폭로전으로 그로기 상태에 몰려있다고 해서 ‘다운’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여전히 임기의 절반이 남은 최고 권력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측근들의 배신과 자신의 어리바리로 한 순간에 탄핵 펀치를 맞고 쓰러졌지만 윤 대통령은 이미 그에 대한 ‘학습’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대비책 또한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지도 모른다. 계엄령 논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파병’ 사태는 여전히 ‘충동적인’ 변수에 속한다.
‘국민들이 열 받고 있으니 권력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이 대표는 지금도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재명 대통령 등극’을 위해 촛불을 들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윤석열 검찰독재정권 응징에만 관심을 둘 것인가. ‘윤석열=탄핵’이 곧 ‘이재명=대통령’이라는 등식은 이 대표의 오산이자 오만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대표에게 희망적인 변수들은 있다. 한번 떨어진 대통령의 권위는 절대 다시 세울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현재의 권력을 총동원해 탄핵에 저항한다고 해도 실추된 권위 때문에 그 위세는 레임덕에 준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힘이 없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실이 ‘바이든-날리면 2탄을 찍으려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김영선 공천 해줘라’가 아니라 ‘김영선 회 줘라’라는 것이다. ‘수조 물만 먹지 말고 회도 먹게 해 줘라’는 대통령의 배려 개그가 지금 확산중이다. 국가 최고 통치자가 완전히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됐고 ‘한번 땅에 떨어진 권위는 절대 다시 주워서 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작동하는 정치에서 윤 대통령에게 지금 닥친 위기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시간의 문제일 뿐 ‘가혹한 현실’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정치를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아무런 능력도 없다. ‘김건희’나 ‘명태균’이 없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에게는 리더십 부재라는 말도 사치다. 윤 대통령은 무능(無能) 무상(無想) 무치(無恥)의 ‘3무’를 가지고 있다.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고, 염치도 없기 때문에 약한 펀치 한방에도 무서워 뒤로 꽁무니를 뺄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이제 그 비등점을 넘어서고 있다. 윤석열-김건희 국정농단 리스크가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압도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법리적으로 접근하며 정량(定量) 평가를 해왔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 폭망’ 사례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하는 정성(定性) 평가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법적인 문제보다 국민 정서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재명과 윤석열 두 사람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김건희 여사를 앞세운 윤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가 이재명 사법리스크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본다. 그래서 현재권력 심판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다. 이는 이 대표가 11월 중 유죄를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극에 달했던 1년 전의 체포동의안 정국 때 윤석열-김건희 부부 권력이 도덕성이 무너진 야당대표와 대비되는 절제되고 겸손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상황은 지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재명 대표는 ‘탄핵이냐, 임기단축 개헌이냐’는 식의 이분법적이고 편의적인 자기발상에 빠져 ‘이제 내가 다음 대통령’이라는 발톱을 성급하게 드러낸다면 탄핵 국면이 절정에 치닫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외면당할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표가 해야 할 일은, 탄핵 여부는 국민에게 맡기고 자신은 포퓰리즘이 아닌 무너진 나라의 정상화를 위해 구체적인 솔루션과 로드맵을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각인시키는 것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탄핵이 아니라 권력을 사유화하는 대통령을 응징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꼭 탄핵이어야만 한다면 이재명 대표도 따라야 하겠지만, 그가 대권욕에 매몰돼 섣불리 탄핵을 ‘지시’한다면 자신도 그 표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