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기노 칼럼] 기억의 조각

by 성기노
b683e7db-0364-4b72-9049-fb40bb48cd33.jpg


1994년 경 난지도(蘭芝島)에 갔었다.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높게 쌓아올린 쓰레기더미를 벽 삼아 움막같은 집들이 좁은 길을 따라 죽 늘어서 있었다. 저녁 무렵 가로등 몇 개가 칠흙같은 어둠을 애처롭게 밝히던 난지도의 그 밤은, 지금도 흑백사진 몇 장으로 내 기억의 저편에 뚜렷이 남아 있다.


현재의 서울 상암동에 있었던 난지도는 원래 난초(蘭草)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섬이었다. 과거에는 유명한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릴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넘쳐 나는 쓰레기들을 임시방편으로 난지도에 쌓아놓기 시작했고 1978년부터는 서울의 온갖 쓰레기들이 모이는 처리장이 되었다.


난지도는 원래 해발 8m의 낮은 섬이었으나 나중에는 해발 100m의 쓰레기 산이 되었다. 한강을 지나다 보면 상암동 쪽에 보이는 두 개의 낮은 산이 과거 쓰레기 매립장 흔적이다. 지금은 상암동에 첨단미디어시티가 조성돼 난지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1993년까지 이 섬은 서울 시민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를 담담하게 받아내던, ‘성장의 잔혹사’를 상징하던 곳이었다.


그렇게 난지도는, 쓰레기로 생활을 꾸려나가던 서울의 최하층 서민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난지도 사람들은 강남 3구의 쓰레기가 들어오는 날이 그들의 장날이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난지도 주민 중 95% 이상이 쓰레기업에 종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등 대고 누울 한 평 공간이 없어 쓰레기더미를 벽 삼아 옹기종기 집을 지었고, 먹고 살 길이 없어 쓰레기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배를 채웠다. 난지도에는 1996년경 255가구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성장의 뒤안길에서 누군가 살았을 우리 이웃들의 기록이자, 나의 기억이다.


난지도는 1996년 말부터 조립식 주택 철거에 들어갔고 매립지 ‘안정화 공사 착공’(덮개·차수·가스·침출수 처리 등 본격 복토·정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2년 5월 1일, 월드컵 개최에 맞춰 공원도 개장했다. 난지도는 그렇게 완전히 매몰이 됐고 새로운 땅이 되었다.


한때 쓰레기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예쁜 공원으로 변신했지만 그 아래에는 아직도 옛날 우리가 버렸던 쓰레기들이 토해내는 메탄가스가 긴 한숨처럼 흘러나오고 있다. 공원의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발 아래가 쓰레기 산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끔 목격되는 ‘메탄가스 포집 시설’을 보면 성장의 후유증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냄새나는 쓰레기 산을 묻고 폼 나는 공원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도 같이 묻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상암동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나러 갈 때마다 옛날 내가 마주쳤던 그 생경하고 쓸쓸했던 우리 이웃들 기억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지곤 한다.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단순한 연민이, 지금은 근대화가 감춘 그늘, 발전 신화의 뒷면, 도시 빈민과 환경 불평등의 상징같은 ‘기자의 일’로 바뀌어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망각은 죄가 없다. 하지만 기억의 조각이 내 머릿속 어느 한 서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 기억이 말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난지도는 흙으로 덮였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뒤쳐진 사람들의 고단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수많은 ‘난지도의 사람들’이 성장 속에서 외면 받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10월 29일이면 이태원 참사 3주기다. 나는 그날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삼켜야 했던 그 비좁은 골목, 서로의 몸이 벽이 되어 버린 그 절망의 통로, 공포가 질식처럼 내려앉았던 그 어둠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난지도를 묻은 것처럼 이태원도 차츰 기억의 저편으로 묻혀간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그날의 난지도가, 그날의 이태원이, 기억의 조각이 돼 영혼처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묻을 수 없다. 기억은 역사다. 기억의 조각을 상식과 책임으로 맞춰나가는 일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기억이 멈추지 않는 한, 희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은 투데이신문 2025년 10월 17일자 칼럼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기노 칼럼] 반중(反中)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