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부처 업무보고 생방송이 장안의 화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는 설도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이 대통령의 돌발질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장관이나 기관장의 업무 파악도나 장악력 등 ‘능력시험’에 더 쏠려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밤늦게까지 부처별로 미리 받은 업무보고서를 꼼꼼하게 읽어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관가에 나도는 ‘족보’의 예상문제에서 질문내용을 뽑는 게 아니라 구석에 박혀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언뜻 사소해보이지만 책임자들의 능력을 평가해볼 수 있는 문제만을 골라 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식자랑을 한다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의힘은 ‘왜 야당 인사들만 콕 찍어 더 면박을 주느냐’며 그 정치적 의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자신의 패를 먼저 보여주고 상대의 패까지 어쩔 수 없이 꺼내게 만드는 이 희대의 업무보고 생방송 ‘연출’은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공무원들이 보고할 때 ‘주로’라는 단어를 주로 쓰는 데 절대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 ‘주로’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이렇게 ‘주로’ 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관료주의 마인드가 담겨 있다. 이는 공무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깊게 밴 습속으로,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선례와 관행을 기계적으로 재생산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병폐다.
또 하나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이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요구가 동시에 들어 있다. 문제의 진단에서 멈추지 말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책임 구조를 제시하라는 요구다. 이와 함께 ‘과거에 주로 이렇게 해왔다’는 말 대신 지금 조건에서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선택지를 분명한 언어로 설명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말은 단순한 다그침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통과의례 답변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실행 액션으로 바꾸라는 압박이다. 공무원이 익숙한 관행과 절차를 나열하는 대신 무엇을 언제까지, 어떤 수단으로, 누가 책임지고 할 것인지 밝히라는 주문을 집요하게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주로’를 금지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를 상투어처럼 반복하는 이유는 행정이 과거의 관성을 재생산하는 조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통해 스스로를 혁신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신호를 주려는 데 있다. 이런 이재명 대통령의 ‘솔루션 정치’가 조직논리에 찌든 관료사회를 얼마나 바꿔낼 수 있을지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사실 이 대통령의 ‘솔루션 정치’는 이제 첫 걸음을 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와 관료가 결합한 ‘관리 국가’ 국가 통제 모델을 내세웠다. 목표와 가치를 공유한 강력한 관료국가였다. 대통령과 관료가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시민사회, 노동자, 농민의 희생과 배제를 전제로 한 효율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은 관리가 아니라 상호소통과 책임이다. 공무원들과 현안에 대해 공개 토론을 거쳐 최선의 대안을 도출해내는 ‘솔루션형’ 리더십을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집단지성과 공개 회의, 행정과 정치의 분리 등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희의 관리가 이재명의 소통으로 진화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추가 점검과 보완도 필요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향후 5년간 예산 100조원을 쏟아 부어 한국을 AI사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AI 시대 핵심은 자율성이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중앙에서 일괄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커질수록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율성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조직과 사회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가 된다.
AI 시대에는 정답을 아는 소수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다수의 자율성이 모일 때 초고속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집단지성이 만들어진다. AI 시대의 솔루션 정치는 ‘대통령이 답을 아는 시대’가 아니라 ‘현장이 답을 낼 수 있게 만드는 시대’여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진짜 관료주의를 깨려면 해법을 지시하는 리더가 아니라 자율성을 보장하는 리더가 되느냐가 그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의 ‘관료능력평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일일이 숙제검사를 하는 것보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그 해법을 설계, 집행한 뒤 결과에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 대통령의 돌발질문에 즉문즉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 과제를 어떤 집단지성으로 풀어낼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 서 있다.
*이 글은 2025년 12월 19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