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호텔 뷔페에서 본 ‘다정한 김병기’

by 성기노
17097_57790_539.jpg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난 9월 11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몇 년 전 서울시내 유명 호텔 뷔페식당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가족을 본 적이 있다. 간간이 대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호텔을 나왔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김 원내대표가 가족을 잘 챙긴다는 것과 함께 아들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언하는 모습에서 사려 깊은 가장의 면모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 원내대표를 둘러싼 대한항공 숙박권 특혜와 공항 의전 청탁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가족의 진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나오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은 공교롭게도 그의 개인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주로 가족들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권력이 사적 영역으로 침투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경계가 바로 가족이다. 국회의원의 권력이 공적 책임이 아닌 특권의 도구로 인식되는 순간, 그는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잃고 권한과 지위를 사유화하는 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국회의원들은 생각보다 권력이 막강하다. 정부기관의 중요한 법안이나 조직 개편 등의 이슈가 있을 때 실국장들은 의원실과 약속을 하고 찾아가 열심히 설명을 한다. 보좌관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여전히 관가에서는 의원실 눈치를 보며 ‘줄 대기’에 여념이 없다.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기업의 존망은 물론 정부기관의 주요 정책이나 법안이 춤을 추게 된다. 여당에서 반복되는 인사 논란을 보면 의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청탁이 오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주요 대권주자라도 된다면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줄을 서는 기업인들이 없는 것 같아도,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이번 김병기 원내대표 사태가 심각한 것은 집권여당의 원내 총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가진 인물이 특혜와 의전을 당연한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각 반환하겠다’는 안일한 해명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의 극치다.

이런 권력자의 편의적인 발상이 통용된다면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는 들키지만 않으면 용인되는, 운의 영역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사실 김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를 둘러싼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의혹은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특혜나 특권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지금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김병기 원내대표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전직 보좌진들의 대화방 ‘욕설 난무’ 장면들을 공개하면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죄는 휘발된다고 믿은 것인지, 진심 김병기 원내대표에게 묻고 싶다.

여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터져 나오는 데도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입을 꾹 닫고 딴 세상 사람처럼 처신하는 것 또한 그들이 세상 변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침묵은 권력 남용에 대한 동조이자 기득권 카르텔의 방어기제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미 견고한 권력집단으로 변모했다. 그들만의 성벽 안에서 벌어지는 특권의 방조와 묵인은 국민의 상식을 비웃고 있다. 2030 청년 세대가 민주당에 더 냉소적이고 지지율도 저조한 까닭은, 그들이 민주당을 정의와 공정의 대안이 아니라 기득권 카르텔로 공고화된 또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언행을 보면 민주당 지도부와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 이 대통령이 정치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듯 행정에만 올인하는 것이 과연 국정운영에만 매진하려는 국정최고지도자의 순수한 열정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과 기준이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는 것을 영리한 대통령이 애저녁에 간파하고 완전히 자기변신을 하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정부기관 업무보고나 국무회의 때마다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며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권력은 자기 것이 아니고 타고난 것도 아니다. 잠시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위정자가 국민주권의 원칙을 잠시 망각해 권력의 달콤한 맛에 빠지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난다는 것을 누차 경고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위정자들에게 잠시 권력을 위임한 것은 그 힘으로 자기 가족의 사적 편의를 도모하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회의 그늘에 놓인 경제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라는 공적 책무 실현의 준엄한 명령이다. 최고 권력자인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시대의 변곡점을 직감하고 가는 곳마다 낮은 자세로 임하며 국민의 뜻을 살피고 있다.

반면 그보다 더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할 집권여당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낡은 특권 의식에 갇혀 권력의 사적 남용이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엄중함을 망각한 채 가족의 안락을 공적 지위보다 우선시하는 행태는 결국 주권자의 심판을 부를 뿐이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 호텔에서 목격했던 김병기 원내대표의 그 따뜻했던 가장의 모습이 진심이었기를, 그리고 그날의 뷔페 식사값만큼은 본인의 지갑에서 나왔기를 간절히 믿고 싶다.


*이 글은 2025년 12월 26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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