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정권과 검찰개혁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다 결국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이후 그는 단박에 보수세력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그로부터 두 어 달 뒤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일 친한 정치인 A가 지금 거기에 베팅을 하려고 하는데 대선에 당선 될 수 있겠느냐.”
의외의 물음에 당황했다. 평소의 신중한 그답지 않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가능성을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대뜸 물었다. 물론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그때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던 터라 정치권과도 계속 교류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치적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대선 승리까지 멀고도 험한 길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 칼럼에서도 윤 전 대통령의 구태정치를 지적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4개월 여 뒤인 6월 29일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 후 그는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것처럼 보이자 가장 먼저 빼든 칼이 바로 ‘윤석열 병풍’이었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오갈 데 없는 민정계나 오로지 집권만 바라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하던 중진들을 대선이 다가오면서 하나둘씩 ‘이회창 병풍’으로 세웠다. 결과는 뻔했다. 윤 전 대통령 또한 정치적 이념과 가치로 ‘통합’을 이끌어내고 전국의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 줄타기’에만 집착하는 인물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였다.
그 영입자 중에 한 명이 바로 필자에게 대선 당선 가능성을 문의했던 A씨였다. 그때만 해도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이지 않았기에 A씨는 나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것이었다.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에 승리했고 A씨는 정권에서 한 자리를 꿰차며 황혼이 지는 무렵에 다시 ‘권력보전’을 하는 기막힌 처세술을 보여주었다.
지금 국민의힘에는 A씨 못지않게 멋진 줄타기를 선보인 중진 의원들이 많다. 특히 ‘친윤계’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수정당에 연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가 국민의힘을 ‘먹는’ 데 결정적 뒷배가 돼 주었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정치적 자질이나 국가 운영에 대한 소신과 철학, 무엇보다 마구잡이로 줄 세우기를 하며 끌어 모은 ‘권력바라기’들을 고함과 욕설, 질책과 권위로 제압하는 그 정치적 성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 본질을 외면한 채, 그를 대권으로까지 밀어올린 현재 국민의힘 친윤계의 정치적 과오는 결국 12.3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참사까지 야기했다.
최근 친윤계의 핵심이었던 윤한홍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주장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동혁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며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며 ‘똥 묻은 개’론을 설파했다.
그 후에도 윤 의원은 의대정원 관련 직언을 했다가 10분간 험한 욕설을 들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자신은 바른 말을 하는데 윤 전 대통령의 ‘불뚝 리더십’ 때문에 힘들었다는 윤 의원의 언사는 작금의 보수세력 멸절 위기의 원인을 힘 빠진 보스한테 전가하는 것 외에 자신의 정치적 선택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태세전환’이다.
윤한홍 의원의 ‘윤석열 절연’ 주장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본인 이미지만 챙기려 한다” “친윤 혜택 다 누리고 이제 와서 거리를 두느냐”며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치는 허업이지만 때로 국가의 운명을 사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최고 권좌에 올라 야당이 말 안 듣는다고 국회에 특전사를 난입케 하는 정치 재앙을 초래하는 데 친윤계는 그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쩌면 그들이 윤 전 대통령보다 더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몇 시간만 얘기해 보면 그 인물이 어떤 성정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런 욱 하는 사람이 국가의 안보와 안전 키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려놓고 그 콩고물을 나눠먹으며 시시덕거렸다.
윤한홍 의원은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할 때 그 TF책임자였다. 서울시청과 대통령실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 출신 윤 의원이 청와대 이전의 비효율성을 몰랐을까(용산 이전과 청와대 복귀를 합친 ‘왕복 이사비’는 1,300억원이었고, 합참 신축·부대 재배치 등 장기 비용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누릴 것 다 누려 놓고 이제는 정치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보스에게 등을 돌리는 친윤계 일부 의원들의 변절은 권력의 무상함을 넘어 최소한의 염치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만든다. 권력을 누린 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당당한데,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이다.
친윤계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먼저 반성하고 참회했다면, 그래서 한명이라도 의원직을 내려놓거나 불출마를 선언했다면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향한 첫걸음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본 글은 투데이신문 2025년 12월 12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