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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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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 Jan 09. 2017

빨래

일요일 오후



일요일 오전엔 별일이 없으면 집안 청소를 한다. 가장 먼저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 위 먼지를 털어낸다. 이불을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 걸쳐놓고 방과 거실의 바닥을 닦고 주방을 청소한다.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내려 미리 뿌려둔 락스 냄새를 제거한 후 변기를 닦는다. 그러는 사이 세탁기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한 끝에 빨래가 다 되었음을 알려준다. 이제 주말 청소의 하이라이트 시간이 되었다. 세탁기 안에 서로 엉켜 있는 빨래들을 끄집어내어 발코니로 나간다. 저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며 엉켜 있는 빨래들을 풀어 주고 주름을 펴기 위해 힘껏 턴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빨래가 머금고 있던 물기가 내 얼굴에 와 닿는다. 기분 좋은 일요일 오전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빨래를 널어두고 욕실 청소에 돌입한다. 욕실 청소가 끝나면 바로 샤워를 하고 주방으로 나와 점심을 만든다. 홀로 점심을 먹고 잠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그렇게 일요일 오전에서 일요일 오후로 시간의 무게가 기운다. 서쪽으로 나 있는 발코니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세상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잊게 해줄 만큼 따스하고 기분 좋은 햇살이다. 창 밖의 빨래들도 햇살을 맞으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원래는 빨래가 아니라 와이셔츠, 러닝셔츠, 티셔츠, 치노 팬츠, 트레이닝 팬츠, 수건, 양말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세탁기 속에 들어가 서로가 엉키고 뒤엉킨 끝에 빨래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일요일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5월의 바람을 느끼고, 그렇게 앞으로 있을 일주일은 준비한다. 각자 땀에 절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거칠게 흔드리고 물에 흠뻑 젖고 하루 종일 어둡고 쾌쾌한 구두 속에서 버텨나가야 한다. 그 순간을 위해 이렇게 따사로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곧 고이 게어져 서랍장 속에 숨죽이고 있다가 자신의 일을 해야 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야지. 그리고 그렇게 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빨래가 되어 일요일 오후의 햇살을 맞이하겠지.







가지런히 널어져 있는 빨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놓아두고 오후의 햇살 속에 향기를 발하는 빨래의 냄새를 맡아보려 발코니로 나왔다. 해는 이제 후지산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조금 있으면 저 해도 후지산 뒤로 넘어가고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게 또 일요일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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