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것들.
-갑자기 정해진 장소 외에 다른 곳은 거의 가지 않는 내 일상이 답답했다. 그 답답함과 권태로움이 참을 수 없어졌을 때 통영에 가기로 했다. 왜 한번도 가본적 없던 통영이 떠올랐던 걸까?...잘 모르겠다. 사진이 예뻐서였나.
-답답하니 혼자 여행 좀 다녀오겠다고 또 말하는 딸한테 엄마는 "너도 참 유난스럽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라고 걱정을 섞어 말했다. 나도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매일 출근해 돈을 벌어야만 하고, 공부를 해야만한다면 그렇게 살아지겠지. 근데 지금은 아니니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백수여서 좋은 점 중 하나.
-가방도 대충 싸고, 옷차림도 최대한 단순하게. 계획은 짜지 않았다. 계획 없이 가는 여행은 처음이다. 계획하지 않으면, 생각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던 내가 아무 생각없이 떠나다니... 많이 변했다. 그 변화가 맘에 든다.
-출발 5분 전에 표를 끊었다.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니 어느새 통영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짐을 놓고 동피랑 벽화마을로 갔다.
-벽이 있는 공간은 모두 도화지가 되는 마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의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 마을. 영하 7도 라는 서울날씨에 비하면 통영은 따듯한 편이었다.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지는 벽들도 있고, 잠시 생각하게 되는 벽도 있었다. 화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벽에 칠을 했을까 생각하며 산책하는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남기던 날개 벽화 앞에선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동피랑 마을 구경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아쉬워서 이순신공원에 갔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한 순간 나는 나중에도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시원하게 뻗은 바다, 높지 않아 찰랑찰랑 소리내며 드나드는 파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계단을 내려갔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와 앉아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었다. 20대초반의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 서로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반복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잔잔한 바다가 하늘과 만나는 곳을 보고 있노라면 시끄럽던 마음과 머릿 속이 조용해졌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선 이런 곳을 찾아 다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공원은 내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