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무너뜨린 우도.

내 계획대로 된 것은 우도에 갔다는 것과 예약한 숙소뿐이었다.

by 꾸마

자기 몸뚱이 만한 가방을 메고 제주에 도착한 우리 자매. 도착하자마자 우도로 가기 위해 성산항으로 이동했다. 성산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마구 불어 댔다. 그래도 우리는 표를 끊었고, 오늘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 날에는 우도에서 못 나올 수도 있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은 흘려들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우산이 자꾸 뒤집히고, 결국 처참하게 휘어져버려서 우비를 사 입었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그 위에 우비를 입은 모습이 거북이 같아 우스웠다. 우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깔 웃으며 우도로 가는 배를 탔다.

난 의외로 생각이 많고 계획적이다. 수험생 때는 매일매일 무엇을 얼마나 공부할지 계획하고 계획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 공부했다. 여행을 갈 때도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잘지 대략적으로나마 계획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지금은 나이를 먹으면서-난 아직 어리지만- 많이 여유로워진 편이다. 2012년의 제주에서 우리가-... 사실은 내가-계획한 첫날은 우도의 올레길을 걷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이런 날씨에 어떻게 걸어. 그냥 오늘은 주구장창 쉬자." 했을지도 모르지만, 3년 전의 나는 우도를 걸어야만 했다. 비바람이 불어도.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손 빨간 거 봐.. 그래도 좋다고 손 잡고 걸었다.

<생의 한 가운데>라는 책의 첫 구절은 "자매는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또는 조금도 모른다."로 시작한다.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 중 한 분은 이 구절을 인용하며 본인은 조금도 모르는 편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로 말할 거 같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쪽에 가깝지 않나 싶다. 동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십여 년간 한방을 쓰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내가 울 때 위로해주고, 같이 욕도 해주고, 때로는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했던 동생이다. 그런 동생과 헤어지게 된다는 게 애틋했다. 걷는 내내 우리는 노래를 부르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심각해졌다가 풍경에 감탄하고 시답지 않은 것에 까르르 웃었다.

잠시 쉬어간 카페에서. 내 심정을 담은 그림.

그동안 비는 부슬비로 변하더니 이내 그쳤다. 때를 놓칠까 봐 더 열심히 걸었다. 올레 표식을 찾아다니면서 걷는다고 걸었는데 자꾸 길을 잃었다. 주택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돌담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겨우 표식을 찾아 다시 걸었는데 난데없이 쇠똥 지뢰밭을 해쳐 가야만 했다. 그때마다. 생각대로 안될 때마다 난 불안해했다. 제주답지 못하게. 꼭 올레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을. 헤매고 있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우도의 가장자리를 걸어도 충분했을 것을.


내 계획이 어퍼컷을 맞고서 KO패를 당한 사건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우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침. 우도에 풍랑주의보가 내린 것이다. 그 말인즉슨 제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고, 그건 내 계획에 없었다. 전날 매표소 직원의 말에 귀기울일 것을.... 날씨가 안 좋아도 여객선 한 척 정도는 오간다는 사장님의 말을 믿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배는 한 척도 뜨질 못했다. 내 글을 처음부터 읽었다면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또..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나보단 덤덤한 동생 앞에서. 오픈한지 일 년 만에 풍랑주의보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난민들은 처음 겪으신 사장님 앞에서. 지금도 떠올리면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차고 싶은 기억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시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신 사장님은 난민들을 위해 칼국수를 대접해주셨다. 바깥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 대는데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여 먹었던 뜨끈한 칼국수. 지금도 이곳에선 풍랑주의보로 인한 난민이 발생할 때마다 "난민 칼국수"를 끓여 드신다고 하신다. 제주로 가는 낚싯배라도 뜨지는 않을까 내일은 배가 뜰 수 있을까 계속 알아봐주시고 신경 써주시던 사장님. 사장님도 얼마나 당황하시고 초조하셨을까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주신 사장님이 참 감사하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 난 제주에 오기 훨씬 전부터 짜 온 계획들을 취소했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양해를 구했고,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 몇몇과 함께 우도를 누렸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셨던 언니 두 분과 체육 관련 일을 하셨던 걸로 기억나는 남자 두 분 그리고 우리 자매. 마트에서 카드와 매니큐어를 사와 카드놀이와 네일아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해물탕과 문어숙회에 진탕 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말 멋진 사장님이 계시는 카페도 소개받아 가고. 그 바람을 뚫고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말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매력적이었고, 함께 하는 시간들은 즐거웠다.

그 때 그 분들. 잘 지내고 계시죠?ㅎㅎ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법도 이때 배웠다. 할 일이 없을 땐 카페의 마약 같은 의자에 앉아 일기를 쓰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꼬닥꼬닥 졸다가 깨서 다시 바깥 구경을 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에서 벗어나 있는 그 순간은 참 달콤했다.


난민들은 우도에 갇힌지 이틀 만에 제주로 돌아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었다.


2012년 우도에서 내 계획대로 된 것은 우도에 갔다는 것과 예약한 숙소뿐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얻을 얻었고, 느꼈다. 당시에는 우도에 갇혀있던 하루하루가 벌처럼 느껴졌지만 돌아보면 복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즉흥과 우연 속에서 소중한 추억과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언젠간 정말 아무 계획 없이 덜렁 제주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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