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이야기
“본부로 이송! 이 아이… 뭔가 수상하다. 아니, 이 아이는 분명히 그들 중 하나다.”
차가운 쇠고랑이 손목에 채워지자, 가은은 자신이 외면하며 피하려 했던 이 차갑고 냉혹한 역사 속에, 진짜로 갇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끌려가는 길은 험난했다. 순사들은 그녀의 롱패딩과 운동화를 잡아채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녀의 필사적인 조선어 외침은 그들에게 더 큰 의심을 줄 뿐이었다. 도착한 곳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서대문형무소.
가은이 불과 며칠 전, 졸업 시험이 끝난 후 방학 숙제 겸 역사 프로젝트로 견학을 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는 전시실 유리 너머로 역사를 바라봤지만, 지금 그녀는 그 역사 안에 던져져 있었다.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춥고 습했다. 곰팡이 냄새, 그리고 인간의 절망이 섞인 냄새. 며칠 전, 전시관에서 보았던 붉은 벽돌과 철창문이 이제는 그녀를 가두는 차가운 현실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갇혀 있던 감옥이라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제 가은에게 이것은 ‘박물관’이 아니었다. 영희가 말했던 대로, **“진짜 총알도 진짜고, 체포도 진짜”**인 현실이었다.
좁고 어두운 독방에 던져진 가은은 몸을 웅크렸다. 취조실에서 그녀는 ‘어디서 왔냐’, ‘누구와 연락했냐’는 고문에 가까운 질문 세례를 받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미래에서 온 미친 아이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순사들은 활자판과 그녀의 수상한 차림새 때문에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가은은 병수가 마지막까지 책을 움켜쥐려 했던 손끝을 떠올렸다. 이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공부했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그 무게가 이제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며칠 후, 좁은 수감방 안.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웅크려 있던 가은 곁으로, 같은 방에 수감되어 있던 중년의 여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여인은 단정했지만, 눈빛은 깊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취조는 좀 어땠니.”
가은은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여인은 가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단단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여기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서 있지. 왜인 줄 아니?”
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아는 독립운동은 일본과 싸우는 것이 전부였다.
여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너의 시대를 살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살아야 하니까. 해방은 단지 일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란다.”
그녀는 가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지.”
그 말이 가은의 심장을 후려쳤다. 여운형 선생이 했던 말. 세진과 영희가 지키려 했던 가치.
가은은 자신이 왜 그토록 이 여행을 두려워했는지, 왜 역사를 외면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역사는 시험 과목이나 지루한 숙제가 아니었다. 그건 목숨을 걸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처절한 싸움이었고, 그 싸움의 무게가 그녀의 시대인 2025년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이 때론 싸우는 일이라는 프롤로그의 문장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가은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이제 알겠어요. 저는… 제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왜 필요했는지는 이제야 알겠어요.”
그녀의 고백과 동시에,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정체불명의 태극기 조각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부신 섬광. 마치 세상의 모든 색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한 격렬한 충격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퍽.’
눈앞이 번쩍하고 무너졌다. 색이 사라지고, 공기가 바뀌었다.
가은은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차가운 돌바닥이 아닌 닦여진 대리석 바닥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 냄새 대신, 은은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녀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시실 중앙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왁자지껄한 소리.
“가은아, 괜찮아? 왜 여기 혼자 서 있어?”
친구들이 셀카를 찍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롱패딩을 입은 채. 그녀의 손목에는 쇠고랑의 흔적 대신, 축축한 땀만이 남아 있었다.
전시실 유리 너머, 바랜 태극기 조각 하나가 여전히 선명하게 놓여 있었다.
가은은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그녀는 감옥에서 고난을 겪고 독립의 이유를 깨달았다. 이제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 새겨진,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만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녀는 비로소 알았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사명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