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공부하는 사람들.

일곱 번째 이야기

by 안분지족

작은 방 안, 빛바랜 책들이 벽에 기댄 채 늘어져 있었다. 한겨울의 싸늘한 공기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일부를 함께 읽겠습니다.”

말을 꺼낸 이는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었지만, 말투와 자세에서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 방 안에는 가은을 포함해 열 명 남짓한 이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종이조차 귀한 시대, 누렇게 변색된 책장이 돌아갈 때마다 조심스런 손끝이 마치 성서를 대하듯 공손했다.

가은은 가만히 숨을 삼켰다.
이 사람들… 당장 내일 일도 어떻게될지 모르는데 공부를하다니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칭찬받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곳에서는 ‘공부’라는 말에 스스로를 바쳐야 했다.

가은의 표정을 읽은 세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식은 무기가 돼. 총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거, 그걸 제일 무서워하는 거야.”
가은은 작게 끄덕였다. 책장 속의 글자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날카로운 발소리가 들렸다.

“일본 순사다!”

누군가가 작게 외쳤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책들은 재빨리 감춰지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비밀 통로를 통해 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한 청년, 이름이 ‘병수’였던가—그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도망가!” 세진이 외쳤지만 병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순사의 고함과 함께 방 문이 걷혔고, 병수는 이내 거칠게 끌려갔다. 마지막까지 책을 움켜쥐려던 손끝이 가은의 눈에 박혔다.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해야하다니…”
가은은 속으로 되뇌며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꾹 눌렀다.

그날 밤, 세진은 작은 종이에 ‘대한의 희망은 깨어 있는 민중에게 있다’는 문장을 써서 가은에게 건넸다.
가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가은에게 공부는 자기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그들의 공부는 조국의 내일을 위한 그들 나름의 독립운동이었다.


이제는 그녀의 마음속에도 조그만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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