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는 심장.

여섯 번째 이야기

by 안분지족

가은은 어두운 창고 구석에서 혼자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조심스러운 발소리에 고개를 들자, 세진이 담요 한 장과 따끈한 고구마를 들고 들어왔다.

“배고플 것 같아서.”
그는 담요를 가은의 어깨에 조심스레 걸쳐주었다.
가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고구마를 받아들었다.

“…아까, 정말 고마웠어. 네가 아니었으면…”
가은이 말을 잇지 못하자, 세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쪽도 위험한데 덜컥 따라온 거잖아. 우린 그런 걸 그냥 모른 척하지 않아.”

가은은 조심스레 질문했다.
“세진아, 나… 왜 믿었어? 난 너희 편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작게 웃었다.

“처음엔… 솔직히 의심했지. 근데 너, 거짓말을 못해. 말할 땐 눈을 자꾸 피하거든.”
그 말에 가은은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위험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일 수도 있는데.”

“우리 하는 일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지.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영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세진아! 방금 연락이 왔는데 인쇄소에서 급히 사람 손이 필요하다네. 밤새도록 격문을 찍어내야 한대.”

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갈래?”
가은은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밤의 인쇄소

작고 눅눅한 인쇄소에는 먹 냄새와 함께 희미한 기계음이 퍼지고 있었다.
낡은 활자들을 맞추고, 종이를 정렬하고, 잉크를 바르며 격문을 인쇄하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고된 일이었다.

“‘대한 독립 만세’… 이거, 붙이다가 걸리면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가은이 종이를 보며 중얼거리자 영희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도, 읽는 사람이 생기면… 한 명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그걸로 된 거예요.”

그 말에 가은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너희는 무섭지 않아?”
세진이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무섭지. 우리 모두 무서워. 근데, 잃은 게 너무 많거든. 형도, 아버지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가은은 그 순간 이해했다.
이건 어떤 의무가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작업이 끝난 새벽녘, 인쇄소 문을 나서는 가은의 손엔 아직 따뜻한 격문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 위엔 붉은 글씨로 단호히 쓰여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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