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은 거짓일까?
입력창 잠금 해제
책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짧은 비명이 터진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 끝, 날카로운 통증이다
손가락을 눈앞으로 가져와 살펴본다
방향이 제각각인 선들이 보일 뿐 새로 난 상처나 흔적은 없다
엄지를 맞대어 문질러보지만 촉각 역시 특별한 지점을 알아내지 못한다
안경은 먼 물체를 선명하게 보는 데에만 특화되어 있다
이 통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벼본다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서서 다시 손가락을 훑어본다
마이너스에 가까운 시력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거짓일까?
가느다랗게 열선이 지나간 것 같다
손가락 첫째 마디의 두툼한 살 바로 아래다
이것은 가려운 느낌인가?
엄지손톱 끝으로 긁어본다
눌린 피부가 하얗게 변한다
주위는 피가 고이면서 붉어진다
심증뿐이다
범인이 사건 현장에 남겼을 물증을 찾아야 한다
자백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목구비가 없는 실루엣이다
어디에 약을 발라야 할지 밴드는 어디에 붙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날카로운 종이가 분명 살갗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통각은 번쩍하고 신호를 보여준 것이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순간을 믿어주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잘 지내냐는 문자를 본다
자신에게 묻는다
'잘 지내는가?'
통증은 버릇처럼 제 입을 막는다
다시 책에 몸을 기울인다
이제 책장은 손으로 잡지 않는다
대신 모서리를 무거운 필통으로 눌러두는 것이다
그러나 책 속의 글자들은 허공을 빙빙 돌고만 있다
'그래, 결심했어'
스마트폰을 열고 설정을 누른다
통각을 알림으로 설정한다
톡 방 입력창 잠금도 해제한다
노란 버튼이 사라졌다
입력창 잠금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