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뛰고 최대한 찌그러지기

다리가 부지런해지는 쩜팔이의 비극

by Kiri




이 여행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게 있다면...

카메라를 4개나 가져갔음에도 DSLR 렌즈를 단렌즈밖에 챙겨가지 않았다는 것...



여행 가기 전 나에겐 번들로 달려온 줌렌즈와 지인에게 헐값으로 산 단렌즈, 쩜팔이(50mm, f1.8)가 있었다.

단렌즈 일반적으로 인물이나 사물을 찍는 렌즈로 풍경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여행 뒤에도 이때만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곤 하는데

왜 주 카메라였던 소니는 단렌즈를 달아 갔느냐는 것이다


풍경은 똑딱이로, 좀 예쁘게 찍는 건 알백(소니 a-100)으로, etc) 어안렌즈, 폴라로이드


나름의 전략을 짠 첫 여행이었으나, 배낭여행객에게 무거운 짐은 과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 목엔 알백이 하나만 주렁주렁.



누군가는 두오모 성당을 찍기 위해 광장에 서 렌즈를 조절하고 있다면,

나는 성당의 꼭대기 첨탑이 잘리지 않게 하기 위해 광장 가장 끝으로 달려가 바닥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뷰파인더를 보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꺾어 몸을 한 껏 웅크리고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머리 닿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버티며 찍었던 두오모 사진은 두고두고 보면서 웃음이 나오는 사진이다

나에게 첨탑을 허락한 광장의 넓이에 감사





이때 같이 있던 동행이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면서 똑딱이를 든 자기보다 사진 찍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방금 만난 사이라 나의 이 열정적인(?) 모습은 찍어주지 않았다. 만약 친구와 함께 갔다면 두고두고 웃음 키워드가 되었을 사진이었는데 아쉽다...



렌즈 하나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에피소드가 쌓여있다


이 외 많은 컬렉션(?)이 있다.


18장 모아 만든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 야경과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오모 풍경

자세히 보면 사진 섹션이 나뉘어저 있음


아쿠아알타를 만났음에도 전면을 찍지 못해 눈물을 머금으며 찍은 베네치아 광장 벽면 일부

추워서 손 떨리고 내 마음도 떨린 아쿠아 알타의 산마르코 광장


전면을 담기 위해 찻길까지 물러 났다가 거치대가 된 주차된 차를 찾고 겨우 찍었던 성 베드로 성당

적당한 거리에 주차된 차를 찾기에 바빳던 시간





덕분이라 말하기 우습지만서도

이 여행에서는 사물이나 인물사진이 여행 사진 중 가장 분위기 있게 나왔다.

사진 찍으며 작품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이었는지 마음에 드는 사진이 가장 많이 나온 여행이었다

수제 마스크 만드시는 베네치아의 장인





'다음에 올 때는 줌렌즈를 들고 와야지~' 하며 이탈리아를 다시 방문할 핑곗거리도 만들고 말이다

넓은 풍경을 포기하는 대신에 가까이 있는 반짝이는 것들을 많이 얻었다





*시점은 대학교 4학년 1학기 첫 1주일을 버리고 떠난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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