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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Jan 08. 2023

운명을 완성하는 건 인간의 나약한 마음

연극 <맥베스 레퀴엠>



고전 중의 고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정동극장에 이 맥베스에 '레퀴엠'의 이름을 붙여 새로운 버전으로 극을 올렸다.

원 대본으로 된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읽었던 맥베스 책을 기억하며 스토리를 예측해 보며 보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그나마 가장 이해가 갔던 스토리로 기억한다.


레퀴엠을 붙여 맥베스와 죽은 이들에게 진혼곡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음악이 조연으로 들어가니 재즈바가 배경이었던 것일까? 거의 음악극이다시피 한 노래가 들어간 것은 거부감이 없었다.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고전풍의 대사에 음악은 중간중간 자체적인 레드썬! 의 찬스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즈바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 맥베스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했다면 커튼콜의 장면 외 필요한 곳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극 중반부에 제대로 활용이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맥베스의 욕망과 고뇌, 나약함, 처절함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배경과 핀조명, 그리고 의자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왕이 될 것이라던 맥베스, 왕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의 후손이 왕이 될 거라는 뱅쿠오.

누구나 평소에 표현하지 못한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작은 불쏘시개를 기다리며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나.


마녀의 예언이 왕으로 승진(?)하고 싶었던 마음을 만들어 낸 건지, 예언을 핑계삼아 가지고 있던 욕망 표출한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건 그리 의미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세상에 나온 욕망을 내 손으로 어떻게 키워가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진짜 마녀의 목소리가 예언이라고 생각했다면, 두 사람이 공모해 자식이 없는 맥베스가 왕이 되고 뱅쿠오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훈훈(?)한 그림이 되었다면 평화롭게 끝났을 것이다.

만약 헛소리로 생각했다면, 맥베스가 글로미스의 영주가 된 사실과 예언을 세 친구(with 맥더프)가 술안주 삼아 하하호호 하는 그림도 괜찮았을 것이다.


맥더프의 인생이 비극으로 빠진 이유는 몇가지 있다. 마녀의 예언, 우연, 조력자 올리비아, 욕심에 저 버린 맥베스 자신. 류정한 배우는 맥더프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표현을 했고, 그의 맥더프는 욕심이라는 크나큰 어둠의 덩어리에 본체가 홀려버린것 같았다. 죄책감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자신은 그정도 두려움은 이겨낼 거라고, 아니 그런 두려움이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리석음.


사이비 종교에 홀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고, 살인 의도는 달랐지만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떠오르기도 하고. 나약하고 나약한 인간이여.


뉴스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이 마치 시대에 뒤처진 사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는건 그만큼 '아직'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한 일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아직'은 소수이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거라고 믿어본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무대 위에서 맡은 시간 동안만 뽐내기도 하고 조바심도 치다가

그 시간만 지나면 지껄이는 얘기로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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