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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Oct 10. 2023

N의 흔한 꿈꾸기 루틴


아.. 뭐였지?

아침에 일어나 눈 앞이 선명해지게 되면, 방금까지 내가 돌아다닌 꿈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에서 깬 약 2~3분, 손가락 하나하나가 있는 걸 확인하기 전.

아직 뇌가 베게와 허공 그 사이에 떠있어 이불의 감촉보다 공기의 흐름이 먼저 느껴지는 그 순간.

아... 방금 무슨 꿈을 꾸었더라...

몽롱한 가운데 뿌옇게 기억나는 꿈을 붙잡아보려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머리를 움직일수록 희미했던 꿈이 더 한걸음씩 멀어져 가버린다. 


멀어져간 꿈을 기억하는걸 포기하고, 어제밤 자기 전에 했던 생각은 뭐였는지 떠올려본다. 아마 그 내용을 이어서 꾸지 않았을까 하며. 내가 마음대로 만든 많은 이야기 중 27번째 시나리오를 새로 쓰고 있었나.


취미가 뭔가요? 특기가 뭔가요?

'독서, 공연보기, 영화보기'라고 쓰고 '내 마음대로 이야기 다시 쓰기'라고 읽는다.

행여 누가 볼까봐 글로 옮겨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구슬로 하나씩 만들어 온 것이 미리 속 주머니를 채워가고 있다. 매일밤 자기 전 구슬 중 하나를 꺼내어 다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움직인다.  


나를 즐겁게 한, 하지만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는 잠자기 전 내 머리속에서 내 식대로 다시 재조립된다. 캐릭터가 새로 생기고 장소도 바뀌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즐거운 것으로 가득 채워 넣어 나중에 다시 보면 메인 줄거리만 같을 뿐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되어있다. 

어느 순간에 나에게 그 이야기는 이미 내가 새로 쓴 이야기가 진짜인것처럼 기억이 되서 원본을 볼 때면 자동으로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이 습관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되돌아 보면 우연하게 엄마와 함께 쓴 이상한 동화에서 시작된거 같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의지로 매일 밤 동화책을 읽고 잤는데, 어느날 다 읽고난 이야기가 마음에 안든다고 엄마와 나름의 토론을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이야기를 써 보자며 공책에 내가 말하는 내용대로 이야기를 써 나갔다. 엄마가 어떻게 써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간 머리속으로 그려나간 동화 장면과 나의 횡설수설하는 말을 빠르게 쓰느라 분주했던 엄마의 손이 기억난다. 


그 시간이 잠자기 전 이불 속이어서일까? 꼭 잠자기 전에 나도 모르게 여러 이야기를 떠올리며 곱씹고 수정하느라 머리가 바빠진다. 너무 격정적인 장면에 빠지면 자칫 잠을 못자고, 느슨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야 스르륵 잠에 빠질 수 있다. 잠자리가 바뀌어도 어디서든지 금방 잘 수 있는 나의 노하우이다.

꿈에 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나름 매일 꿈을 꾸지만, 위에 썼던 글과 같이 매일 아침 '아.. 뭐였더라..' 하며 잊어버리는걸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속의 나도 이야기 속의 나 처럼 어딘가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뛰어다녔을 것이란걸 짐작해 본다. 내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행복한 해피엔딩이니까. 

  

오늘은 몇번째 이야기를 꺼내어 상상해 볼까?



'홍피낭리쇄홍주(紅皮囊裏?紅柱)'

붉은 주머니 속에 빨간 구슬이 부서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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