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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Sep 12. 2021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라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틀린 게 아니야




내 방 한쪽에 200권 정도의 만화책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한 시리즈가 150여 권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증식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아빠는 요리사"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초등학교 5학년 이었고, 사 모으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였다.

이 시기를 특별히 기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친구와 이 책을 보면서 요리를 시도했던 그날, 우리나란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대패(5:0) 한 때였기 때문이다. 새벽에 축구를 보려고 같은 동네 친구 집에서 자던 날이었는데, 새벽 경기를 기다리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고 이다음 관심사인 요리 때문에 난장판이 된 부엌을 치우느라 진작 기억에서 잊혀졌다.


Hidden Story1) 사실 새벽에 잠깐 일어나긴 했는데 점수판을 보고 끄고 다시 잤다

Hidden Story2) 이날 요리할 때 참고했던 만화책은 부모님이 하시던 만화방에서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사 모으기 시작한 건 학생 때 자주 다니던 동네 만화방이 폐업하면서 그 당시 70권 정도 나왔던 이 시리즈를 6만원에 팔고 계셨던 걸 바로 현금 인출을 해서 집으로 들고 온 후 부터였다. 곧 완결될 줄 알았는데.... 작가가 전혀 생각이 없는 듯 해 어느새 150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견한 원피스나 코난보다 심각함)


사실 이 책의 레시피를 보면서 친구랑 한참 고민에 빠졌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물부터 끓이면 되는 거야?"

"재로도 같이 넣는다!"


물과 함께 끓이기 시작한 만두는 피가 다 헤져서 소가 둥둥 떠다니게 되었고, 전골을 끓여보겠다며 같이 넣은 야채는 한강물이 된 물 위에 시래기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육수 용으로 넣은 멸치와 함께.


"이게 전골인 거야? 맛이 하나도 안나. 소금 넣었는데"

"간장 넣어야 하나? 소금으론 부족하나 봐"

"만두도 다 없어졌어....라면을 넣으면 괜찮나?"

"그거 좋다! 라면 넣자!"


결국 그날의 아침은 건더기와 물이 많은 싱거운 신라면 파티가 되었다

만능 음식(?)인 라면 덕분에 다행히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은 시간에서야 겨우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사진 앨범 보는 것처럼 과거 순간순간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여행 사진을 보면서 본 한 사진으로 갑자기 '파사의 동굴'을 탐험하는 것 마냥 기억이 과거로 계속 흘러들어 간 탓이다. (파사의 동굴 기억하는 사람 있으면 칭찬해 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영국 브라이튼의 티룸 스콘



스콘이 뭔지 아시죠?

고소한 버터향에 약간 퍽퍽하지만 잼이나 클로디드 크림과 같이 먹으면 더 바랄 것 없는 꿀맛.

그런데 이 스콘의 존재만 알고 어떤 식감인지, 어떤 모양새인지 전혀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만화책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감으로 만들어본 스콘.

하이디에 나오는 하얀 빵 같이 흰색(밀가루색)인 퍽퍽한 스콘을 나눠주겠다며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고, 친구도 이름만 들어본 스콘이 이런 건가?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받아갔다.



"그런데 스콘이 이런 거야?"

"나도 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지. 먹을 수만 있다면야"

"이건 뭔지 모르겠는데 잼은 맛있다(잼 없으면 못 먹겠다)"


잼도 나름 엄마가 만든 수제 잼을 들고 왔지

안되면 컵라면이라도 먹으면 되고


나도 이런 걸 만들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내가 생각한 순서대로 만들어 봤어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와

내가 가진 도구들과

더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봤지.




오늘 배운 경험은 다음번 움직일 내 손을 더 자유롭게 해 줄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처음 책을 보며 고민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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