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달려나가 만나는 유럽의 하늘
*시점은 대학교 4학년 1학기 첫 1주일을 버리고 떠난 2010년 2월
새벽 4시에 눈을 떳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약 11시. 6시 반 셔틀을 타기 위해 겨울 새벽의 춥고 무거운 공기를 이겨내며 일어났다. 혹시나 못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새벽에 몇번을 일어났는지 모른다.
잠이 덜 깨신 부모님께 다녀오겠다며 인사하고, 전날 싸놓은 캐리어를 끌며 싸늘한 새벽공기가 느껴지는 아스팔트를 걸어간다.
드르륵 드르륵 바뀌끄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새벽을 울린다.
공항에 도착하고 여권을 꺼내려는데, 핸드폰에 부재중이 6건이 떠 있었다. 전부 집이었다.
셔틀을 탔으니 반은 성공했다는 마음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잔 탓에 진동이 울리는 것도 몰랐나 보다,
잘 가고 있는지 전화 하신 거겠지, 하며 또 다시 울리는 휴대폰의 울음소리를 무시한 채 수속을 밟았다.
첫 비행기표. 첫 유럽 여행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단기선교로 태국을 단체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체로 가서 그랬을까, 이 때 다녀온 시간은 내 '여행 기억 필름'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이탈리아 여행을 내 첫 여행으로 삼는다.
내가 혼자 알아보고 내 돈으로 예약한 내 비행기 표.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헬싱키란 곳을 경유하는 핀에어, 알지도 못하는 항공사를 두근거리며 결제한 내 첫걸음. 이제 정말 떠나는 구나를 겨우 실감 하고는 한 숨 돌리는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자마자 쏟아지는 엄마의 큰소리. 내가 주민등록증을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신으로 무슨 외국을 가냐고, 신분증도 없이 어떻게 비행기를 탈 꺼냐고 화를 내셨다.
(지금은 나보다 더 해외 비행이 익숙하신 우리 어머님)
어머니 진정하세요.
제 가방엔 이미 국제 학생증과 여권, 운전면허증까지
3개나 되는 신분증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머쓱해하는 엄마의 전화를 끊고, 아빠에게 다시 전화했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화를 내시는 아빠에게 똑같은 답변을 드리며 안심을 시켜 드렸다. 물론 수화기 반대쪽의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이런때 보면 정말 닮은 부부..
전화를 끊고나니 들떠있던 마음은 다시 현실로 자리잡고, 두근거리며 흥분한 내 마음은 너무도 익숙한 짜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덕분에 평온한 마음으로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시험보는 날 늦잠잤다고 잔소리를 듣는 것 같은 익숙함이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한 지난 4개월, 기쁘기도, 무섭기도, 즐겁기도 했던 시간들.
며칠마다 한 번씩 비행기 예약을 조회해 보았다. 이 큰 돈을 내가 직접 결제해 보는것도 처음이었으니까.
학생 정말... 잘 자더라...
10시간 가서 환승하고 3시간. 이런 비행기 시간 때문에 유럽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좁은 차에 앉아 명절 고속도로에서 14시간을 보냈던걸 생각하면 비행기 안에서의 이 시간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어린 날엔 25시간 봉고차에 어른 10명과 낑겨서 탄 적도 있었다)
비행기의 자리를 너무나도 쾌적했다. 적당한 거리로 다리가 부딛히지 않는 간격. 적당한 크기의 좌석 안의 오롯이 나 혼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동차에 비하면 이 정도의 공간은 우리집 방이나 다름없다.
긴긴 비행시간동안 뭘 하며 시간을 보냈냐고 사람들이 종종 물었다.
잤지.
담요를 펴고, 베게는 허리에 기대고.
전날 불안해서 자지 못했던 잠을 여기서 다 채우리라 결심하며 정말 숙면을 취했다. 시청한 영화도, 읽었던 책도 없다. 10시간동안 온전히 자면서 보내려 생각한 시간이니. 옆 좌석의 아저씨가 식사 시간이라며 깨워주실때 까지 계속 잠만 잔 것 갔다.
자고 하늘찍고, 자고 기내식 먹고, 자고 하늘찍고, 자고 내리고.
옆 좌석 분이 내리실 때 나에게 부러움의 한 마디를 던지고 가셨다.
"학생 정말 잘 자더라. 부럽네"
어제 든 잠에서 아직 깨지 못한 것인지...
트랜스퍼 비행기 시간 전까지 헬싱키 공항 2층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했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노란 불빛. 낮선 외국인의 얼굴들.
이곳에서 말 통하는 사람 오직 나 한명.
정말 모든 것이 꿈 같았다.
지금 시각은 한국시간으로 자정을 다다를 때.
아직 내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는 지금, 난 지구 반대편의 하늘에서 가슴 따뜻한 일몰을 보게 되었다.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목.
시작부터 지금까지 드디어 혼자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혼자지만 외롭지 않아.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시작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