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경궁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긴하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느낌이 좋아.

by 기린

창경궁을 방문하는 날도 하늘이 참 좋았다.

'너 옷이 계속 똑같아.'

훗.

진짜, 언니랑 서울 궁투어를 하는 일주일 내내 같은 잠바 였거든.

누가 보면 같은날 궁투어 다 한줄 알겠어. ㅎㅎㅎ

창경궁은 온실과 춘당지가 매력적이야.

아직 겨울이라 조금은 쓸쓸하게 보이는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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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이 창경원, 다시 창경궁이 되기까지


창경궁은 창덕궁과 별개의 공간이 아니었으므로 창덕궁의 후원을 함께 이용 하였다.

현재 춘당지 주변이 창경궁의 후원처럼 여겨지는 것은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이면서 창경궁을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였기 때문인다.

본래 춘당지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창덕궁) 앞 너른 터에 자리했던 작은 연못(지금의 소춘당지)이다.

지금의 춘당지에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떤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다.

일제가 이를 파헤펴서 큰 연못으로 만들었고, 1983년 이후에 전통양식의 연못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

오늘날의 춘당지이다.

춘당지는 서울 도심에 흔치 않은 넓은 연못으로, 주변의 숲도 울창하여 많은 새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도 춘당지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만나는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은 1909년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건축의 뼈대는 목재와 철재로 이루어져 있고, 외피는 온통 유리로 덮여 있다. 당시 새로운 건축 재료였떤 철과 유리로 지은 대온실의 외관은 대부분이 고풍스러운 목조 전각인 궁궐 안에서 예나 지금이나 매우 이색적이다.

일제는 1907년 순동이 창덕궁으로 옮겨온 것과 때를 맞추어 창경궁의 전각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마침내 1909년 일반에 개방하였다.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 목적이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려는데 있었음은 물론이다.

대온실은 일제의 불손한 의도 아래 훼손된 창경궁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건축된 지

이미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의미를 지닌 근대의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은 근대문황산의의미를 가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온실은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야생화, 자생식물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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