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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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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Oct 29. 2020

가을이 되면 사과나무 보러 간다

가을이 되면

사과나무 보러 간다


검은 안개에 갇혀

무수한 불면의 밤을 헤매던 날들의 어느 날

친구가 손을 잡아끌었다

꿈과 현실의 어디쯤에서

문득 사방으로 사과나무가 가득한 시골길에 섰다

새파란 하늘에서 사과향이 날 것만 같았다

빨갛게 볼을 붉힌 사과들이

영원처럼 늘어선 나무마다 가득히 수줍었다

매번 등 돌려 버리고 마는 나보다

더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 어느 하나도

내 것이 아니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고요한 공기가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신선해서

검은 안개에 쪼그라든 폐가 조금씩 맑아졌다

길은 헤맬 것도 없이 한 줄로 앞서가고

손은 따뜻해서

괜찮을 것 같았다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가을이 되면

사과나무 보러 간다


2018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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