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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l 16. 2016

나쁜 놈, '나쁜 놈'
<38사기동대>

OCN / 2016

최근 시작된 OCN 드라마가 있다. <38사기동대>. 서인국은 못생겼는데 이상하게 매력 있다. 그리고 요즘 핫한 마동석 아저씨가 나온다.(개인적으로 나는 산적같이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제목이 특이하다. 그래서 보기 시작했다. 탈세를 일삼는 권력자들에게 사기를 쳐서 세금을 받아낸다는 설정. 이제 겨우 몇 회 진행됐을 뿐인데, 그리고 사실은 지금까지의 진행만으로도 앞으로의 전개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데도 재미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속이 후련하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을 좌지우지할 만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 앞에서 법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수한 범법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이 그들의 권리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법보다, 법으로 유지해야 할 모든 것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서 시끄러웠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앉으면 이런 생각들이 드는 날이 많았다. '나는 이 나라의 노예일까?', '나는 일하려고 태어난 것일까?', '이 세상은 그저 나의 노동이 필요할 뿐인 건 아닐까?' 그런 날이면 골몰할수록 답 없이 쓸쓸해져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조금 취해야 잠이 들었다. 잠들어가는 나에게 누군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하루의 끝에서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한 둘일까. 그래도 모두 한 줄기 희망이나 꿈 따위를 애써 찾으며 하루를 살고, 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어떻게, 더구나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너무 화가 나고 화가 난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생각을 가진 그들에게 너무나 화가 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개돼지’들은 권력도 돈도 없어서 어떻게 해도 그들에게 깨지고 당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뉴스를 보면서 나쁜 놈(실은 훨씬 더 험한 욕을 쓴다)이라고 욕하는 것 정도. 그래서 이제부터 권력과 돈을 가지고 법을 기만하는 사람들을 ‘나쁜 놈’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사실, 그 ‘나쁜 놈’들에게 법에 의한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만큼이나, 사기를 쳐서 돈을 빼앗고 권력을 잃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이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으니, 통쾌하다. 법에 의해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할 방법은 상상력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권력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니까, 그 권력들이 심지어 법을 만들고 고치기까지 하니까) 상상력으로 가능한 ‘사기’를 통해 그들을 단죄한다. ‘사기’는 명백하게 ‘나쁜 놈’들의 영역이 아니다. ‘사기’에 관한 한 ‘나쁜 놈’들보다 그냥 나쁜 놈(양정도(서인국 분)와 같은)들이 한 수 위다.     


<미생> 열풍이 불고 있을 때, 나는 그 드라마를 조금 보다가 말았다. 드라마를 보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내가 매일 직장에서 겪는 일들을 집에 와서 다시 또 곱씹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공감보다는 위로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38사기동대>가 좋다. 만약 이 드라마가 법정 싸움을 통해 ‘나쁜 놈’을 단죄하는 드라마라면 좀 더 무거운 마음과 각오로 봤어야 했을 것이다. 그 방법이 정당하거나 실현 가능한 것인지도 검증하면서 봐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뻔뻔하고 능청스럽고 얄밉게 머리 좋은 나쁜 놈인 양정도(서인국 분)가 ‘나쁜 놈’들을 속이고 골려먹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당하지 않아도 되고 실현 가능하지 않아도 된다. 재미있고 화끈하게 골려먹기만 하면 된다. 상대방이 많이 약 올라하면 할수록 골려먹기는 재미있는 법. 드라마를 보는 내내 킬킬 거리며 골려먹는 재미를 만끽한다. 물론 사기를 치는 과정이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종종 등장하는 ‘나쁜 놈’들의 갑질이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사기 치는데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개돼지'라 부른 그 '나쁜 놈'들을, 나 대신 시원하게 비웃어 주면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늦은 밤, 다음 회를 기대하면서 양치를 하고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왠지 씁쓸한 뒷맛.

나는 오랫동안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왜 착한 사람은 ‘나쁜 놈’을 이길 수도, 벌할 수도 없는 걸까. 이런 세상 속에서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쁜 놈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쁜 놈’을 벌하는 나쁜 놈의 행위는 나쁜 것일까 착한 것일까. 대체 무엇이 나쁜 행위이고 무엇이 착한 행위인가.(홍길동전을 생각해 보면 이 고민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이건 인간은 과연 악한 존재인가 선한 존재인가, 아니 악이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인가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헉)

가벼운 마음으로 킬킬거리며 보던 드라마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런 드라마가 나와야 하고,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지금이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잠을 청한다. 괜찮다. 언제부터 정답을 알고 살았나. 나는 그냥 양정도를 응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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