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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Aug 04. 2016

지금은 부산행을 보지 않겠다

왜냐고?

나는 좀비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봤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한국형 좀비물 '부산행'이 난리다. 영화평은 '부산행'으로 도배다.

사실, 극장도 '부산행'으로 도배다.

어쨌건 나는, 지금은 '부산행'을 보지 않을 거다.

나는 좀 이상한 성격을 가졌나 보다. 이슈가 되거나 흥행하고 있는 영화는 보고 싶지가 않다.


90년대 중반, 막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많은 영화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던 때가 있었다. 사실, 그때 나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인터넷이라는 놀라운 길이 열리고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울 따름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이라고는 해도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는데 적개는 두세 시간, 어떨 때는 하룻밤의 시간이 온전히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신세계가 열렸으니까.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불법적인 P2P가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곳에서 다운을 받지 않는다. 불법 경로를 통해 영화를 다운로드하는 것이 영화의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영화팬으로서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작권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정말, 전 세계의 영화를 다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대로 다양한 영화가 유통되었다. 그래서 희한한 영화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당연하게도 모든 나라의 모든 영화에 대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래서 희한한 영화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유명한 나라의 유명한 영화밖에 볼 수가 없다. 나는 희한한 영화를 보기 위해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 사이 나도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회가 없다. 주어진 영화 이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물론 국제영화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을 쫓아다니면 흔치 않은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 어떤 직장인이 그렇게 자유롭게 영화제에 시간을 맞출 수 있단 말인가.


할리우드 영화가 영화관을 모두 점령해버리면서 스크린쿼터가 이슈가 되었었다. 거대 자본으로 침범해 오는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할 수도 없는 적은 자본으로 작업해야 하는 우리나라 영화, 나는 우리나라 영화가 살아남기를 기도했었다.

그런데 지금, 극장마다 '부산행'이 걸린다. 영화를 보러 간 사람에게 선택권은 없다. 영화관을 점령한 '부산행'. 마치 좀비가 도시를 점령해 오듯 '부산행'이 전국을 점령한다. 그래서 나는 '부산행'을 응원할 수 없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 자본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라는 것을 인정한다. 흥행과 작품성의 같고 다름을 판단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내용이나 가치를 판단해보기도 전에 먼저 작용하는 자본은 안된다. 그러한 자본은 예술을 예술 자체로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당연히 예술의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돈만 있다면 어떤 노래든지 유명하게 만들 수 있고, 어떤 책이든지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선택권을 박탈함으로써 정해져 있는 답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사회. 그렇게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생각하도록 길들이는 사회. 이런 사회는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가. 왜 이런 사회에 길들여져야 하는가.


한 때 영화를 열심히 보긴 했어도 내가 본 영화가 얼마나 될 것이며, 내 판단이 얼마나 현명할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나는 '부산행'을 보지 않았으니 그 영화의 완성도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은 '부산행'을 보지 않겠다.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 정도밖에 없으니. 박탈당한 선택권을 되찾지는 못하더라도, 강제로 주어진 것을 나의 선택이라고 착각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부산행'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정황 속에서도 영화는 영화이고 내가 사랑하는 예술장르임에는 확실하다. 그래서, 이 불편한 마음이 좀 수그러들고 나면 나는 좋아하는 좀비 영화 하나를 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니다. 예술작품이 더 건강하게 유통되고, 다양하고 신선한 시선들이 마음껏 개성을 발휘할 수 있기를, 저마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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