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적의 역습
아기가 돌이 되기 전까지의 시절은 폭풍의 눈과 같아서 내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사치였다. 그저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남편이라는 안정적인 항구에 정박한 채, 나는 아기라는 새로운 선장을 모시느라 정신없는 선원일 뿐이었다. 내 안의 오래된 흔적, 내면아이는 잠시 잊고 살았다.
아기의 울음이 트리거가 됐다.
"왜 우는 거야. 왜? 왜? 왜??"
유난히 햇살이 뜨거웠던 어느 유월이었다.
나는 아기에게 분수를 보여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아기가 그걸 보면 얼마나 까르르 웃으며 좋아할까. 그 장면만 상상하며 기꺼이 고행길에 올랐다. 집에서 꽤 먼 공원이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푹 눌러쓴 모자 속은 땀과 열기로 가득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내리막길에서는 유모차를 잡고 온몸에 힘을 주며 버텼다. 그것은 나름 아기를 위한 나의 노력이었고, 아기가 좋아할 걸 기대하며 힘든 걸 기꺼이 견뎌낸다는 것. 내가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마침내 분수대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구쳐 올랐다. 나는 벅찬 마음으로 아기를 유모차에서 내려놓았다.
"저기 봐! 분수야, 멋있지?"
그러나 아기의 반응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엄마! 안아. 안아. 집에 가."
갑자기 나온 물줄기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내 다리에 파고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기가 그저 내 다리에 매달려 나의 계획을, 나의 헌신을 망쳐버리는 '방해물'로만 보였다.
'고작 이게 무섭다고? 내가 너 하나 보여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까지 왔는데.'
차갑고 날카로운 생각들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억울함과 배신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아기를 위해 썼던 내 모든 에너지가 순식간에 나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내 안에서는 서른네 살의 나와 네 살에 버려진 아이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선의와 사랑이 어떻게 상처와 뒤섞여 추악한 무기로 변질될 수 있는지 목격했다. 아기의 순수한 두려움 앞에서 촉발된 내 안의 오래된 결핍. 그것은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로 남아있다는 잔인한 흔적이었다.
분수대 앞에서 벌거벗겨진 내면을 마주한 이후, 마치‘엄마 자격 없음' 선고를 받은 거 같았다. 아기에게 "귀엽다, 예쁘다" 속삭이는 내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그 혼란의 중심에서 남편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남편은 아기가 장난감을 집어던져도,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누워도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아기의 곁을 지켰다.
남편의 한결같음은 내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되었다. 아기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아는데, 몸과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다. 그 간극 앞에서 나는 철저히 무력했다.
남편은 사랑을 물려받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사람이었고, 나는 사랑을 배워본 적 없어 내 안의 상처만 대물림하는 사람이었다.
남편 뒤에 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새겨진 흔적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흔적을 다시 바라보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할 수는 있다. 아기의 울음을 안아주는 일은, 곧 나의 내면아이를 안아주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