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흔적에게, 당신의 흔적에게

— 에필로그.

by 하야
나의 흔적에게, 당신의 흔적에게


어릴 적, 무더운 여름이면 털털거리며 목이 자꾸 흐느러지는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보냈다.

“아—”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식으며 노곤해진다.

이제는, 쉬어도 괜찮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과거를 그저 ‘떠올린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지 못했다. 문장을 깁고 짜내는 일은 기억을 파내는 고고학이었고, 감정을 쓰는 일은 오랫동안 눌러 담아둔 내면의 소리를 다시 불러들여 기어이 재경험하는 과정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의 재현이라 부른다지만, 내게는 삼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네 살의 나를 다시 만나는 혹독한 대면이었다.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 앞에서 괜찮다고 다독였던 마음 앞에서 어김없이 저항이 밀려왔다. 이토록 나를 벌거벗겨도 괜찮은 걸까. 이 아픔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수십, 수백 번 키보드를 덮고 모니터를 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작은 아이의 숨소리가,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따뜻한 눈빛이,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숨죽여 울고 싶지 않다는 내 안의 작은 아이의 절규가 다시 나를 이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위태로운 기록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글은 ‘내 트라우마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치명적이야!’라고 주장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양과 깊이로 아픔의 흔적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관계 맺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나의 흔적을 용기 내어 드러내는 것은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흔적을 향한 조용한 노크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낼 수 있다’는 작은 연대의 손짓이다.


글을 쓰는 내내 나를 잠식하던 흔적들은, 이제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단단한 나이테가 되었다. 과거의 흔적은 더 이상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사랑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한 지도가 되었다. 엄마의 부재가 남긴 결핍은, 역설적이게도 내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기 위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이 되었다.


아이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묶어주며, 오늘도 작고 단단한 사랑을 건넵니다.


모든 흔적을 꺼내 놓고 나니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이제 나는 내 안의 네 살배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서른네 살의 엄마가 되어 오늘을 걸어간다. 흔적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 흔적 위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힘이 있다.


나의 이야기가 부디 당신의 흔적에게 닿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작은 온기가 되기를.
그리하여 당신 또한 자신의
흔적 위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용기를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후속작에서는 애착·빚·물건으로 이어진 흔적의 대물림을 어떻게 멈추기로 했는지, 그리고 ‘의도적 비움’이라는 방식을 통해 삶을 다시 구성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후속작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 에서 그 여정을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스쳐간 흔적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