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의미부여, 그리고 유전
나는 행복을 사회적 구성물이자 주관적인 경험으로 바라봤다.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지능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만들고, 사회적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그 기준을 재정의하며 이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행복이 유전적 요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한 교수의 주장을 접하면서 오랜 관점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행복이 유전만으로 결정된다면 시작부터 불리한 게임을 하는 거다. 타고나기를 덜 행복하게 태어난 사람은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 같아서 반감이 들었다.
단순히 기쁘고 즐거운 감정의 지속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적 특성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교수는 모체의 생리적, 심리적 상태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했다. 모체가 임신 중 겪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 기질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사실 아닌가?
그리고 에피제네틱스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환경적 요인이 유전자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발현 방식을 조절하며, 이러한 변화가 다음 세대에도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은 환경이 곧 유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환경적 영향이 단순히 개인의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흔적'을 남겨 대물림될 수도 있다는 것. 대물림이라니, 후덜덜.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동물을 피하는 것처럼, 인간도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어떤 선천적인 반응 회로 같은 걸 당연히 물려받겠지. 물론 동물의 단순한 본능과 인간의 복잡한 행복 감정을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타고난 기질 깊숙이 어떤 선천적인 경향성이 새겨져 있다면 그게 행복감을 느끼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유전이 인간이 어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날지, 스트레스에 얼마나 취약할지, 긍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쉽게 느낄지에 대한 설정점을 제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설정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환경, 맺는 관계, 그리고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개인의 능동적인 노력이 이 설정점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 불리한 유전적 소인을 가졌다 하더라도 긍정적인 환경과 의미 있는 경험, 그리고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충분히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어도 불행한 환경과 부정적인 의미 부여 속에서는 행복하기 어렵듯이. 결국 행복은 타고난 것과 주어진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가는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이다. 이 복잡한 행복이라는 의미에 ‘유전’의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된 것은 행복이라는 인간 본연의 질문에 더 깊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1) 행복의 기준선이 높은 경우
행복의 기준선이 높다는 것은 개인이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성취나 특정 조건을 요구한다.
2) 행복의 기준선이 낮은 경우
행복의 기준선이 낮다는 것은 개인이 비교적 소박하거나 기본적인 조건에서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쉽게 느낀다.
성공은 외부의 평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행복 기준을 이해하고, 그것이 개인의 성장과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선이 높든 낮든, 그것이 개인의 의미 있는 삶과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자체로 성공적인 삶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의문이 든다. 이토록 복잡하고 유동적인 행복이라는 실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행복은 실체가 없는 억지일 수도, 아니면 인간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일 수도.
생각할수록 머리 아프다. 잠이나 자야지.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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