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럭셔리

왜 한 번을 더 참지 못했을까?

by 현실컨설턴트
딱 한번만! 딱 한번만, 그게 모여서 사람이 변하는거야.
- 이태원클라쓰, 박새로이

"아니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네 명의 심사관이 일제히 제 얼굴을 쳐다 봤습니다.


8개의 눈은 묻고 있었습니다.

'너 뭐하는 놈이야?'

'미친거 아냐?'

'쟤 왜 저러지?'


저는 진급심사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진급하시면 어떤 부분을 바꾸시겠습니까?"


10분 정도 진행된 면접에서 다행히 큰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그대로 마친다면 진급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마지막 질문만 없었다면...

하지만 저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항상 마지막 질문은 저 질문이었으니까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 많은 생각이 꼬였습니다. 준비한 무난한 답을할까, 당황한 것처럼 머뭇거릴까.


제 선택은 아시는대로입니다.


"두렵지 않았습니까? 저라면 고객들의 눈이 신경쓰였을 것 같은데요." 팀장님이 물었습니다.

"두려웠죠. 저도 인간인데 왜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습니까?"


재작년에 12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딱 놀기 좋은 규모지요. 3명씩 나누면 4팀이 만들어집니다. 토너먼트가 가능한 최소의 규모입니다. 6개월의 프로젝트 기간동안 최대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스크린 야구, 족구, 실내양궁, 보트경주.

처음에는 우리끼리 하다가 나중에는 고객까지 끌어들였습니다. 프로젝트 중간보고, 종료보고 때도 장남감 총으로 사격대회도 하고 경진대회도 했죠. 그 과정을 정리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 마지막에 팀장님이 던진 질문이었죠.

왜 안 그랬겠습니까?

지금 고백하지만 중간보고, 종료보고를 재미있게 하려고 팀원들을 독려해 준비중인데, 고객사 담당 부서장이 발표 전날 부르더군요.

"주PM님, 이벤트 안 하면 안 될까요?

잘 되면 좋은데 발표 분위기가 안 좋으면 일도 못하면서

노는 것만 고민했다 할거 아니에요."


제 선택은 아시는대로입니다.


며칠 전, 진급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몇몇은 승진해서 축하를 하러 갔습니다. 수선스럽게 1차가 끝나고 의례히 찾아오는 혼란의 시간이 왔습니다. 혼란한 틈을 타, 집에 가려고 발끝을 집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팔짱을 꽉 낍니다.

신입사원 시절 같이 일했던 선배였습니다.

"넌 오늘 나랑 둘이 한잔 더하자."

대답할 틈도 없이 선배에게 끌려 갔습니다. 마주앉아 술을 한참 더 먹고 정신을 놓기 직전에 선배가 물었습니다.

"왜 그랬냐?"

아마도 면접장의 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나 봅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진급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

짧은 시간이라도 저 스스로를 속이기 싫었어요.

지금까지 많이 속이고 살았으면 됐잖아요."

선배가 바로 쏘아 붙입니다.

"그래, 지금까지 속이고 살았는데 한 번만 더 참으면 되잖아."

저는 그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미소만 지었습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한 번만, 한 번만 하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나오는 날, 회사 정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빵, 빵" 합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파트너였던 고객님 중 막내가 지게차 작업을 하다 저를 부른 겁니다.

"수석님, 많이 배웠어요.

일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년이 지났지만 이 친구는 명절마다 메시지를 보냅니다.


진급이 걸렸으니 이번 한 번만,

고객이 저렇게 걱정하는데 다음에...

그랬다면 저는 적어도 회사 그만둘 때까지 나답게 살지 못할 겁니다. 아직까지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애정에 가득찬 조언을 합니다.

"왜 그랬어?"

"고객들은 나중에 뭐라할지 몰라. 튀지 않는게 좋아."

네. 맞습니다.

저도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이 바른 것인지, 객기인지 판단을 못하겠습니다. 순간순간 바뀝니다. 어제 밤에도 그냥 한 번 참을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누군지 몰랐지만, 뉴스나 영상으로 볼때마다 참 멋지게 늙어셨다고 생각했던 영감님이 계십니다. 얼마 전에 그 영감님 사진이 SNS에 도배가 되었습니다. 돌아가셨더라구요. 그 분 이름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칼 라거펠트'

그 분의 검은 사진 아래로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럭셔리다."


저 할배가 안 새기시면, 제 묘비에 꼭 새길까 합니다.

새겨도 지하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힘들더라도

저는 저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아!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서, 심사하시는 분들을 놀래키지 않는 대답도 연구할 겁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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