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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Sep 30. 2023

지적충격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접했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지적 충격을 받았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는 학교에서 군복 입고 군사훈련을 정규 수업(교련이라 불렀습니다)으로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 '국민윤리'라는 이름만으로도 오래된 냄새가 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약간 나치 냄새도 나죠. 

생소했던 그 과목의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쓰신 한 줄이 저는 신선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였죠. 그리고 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로 존재에 대해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져 삶의 의미까지 찾으라 합니다. 이것이 갓 입학한 고등학교 1학년에게 주어진 숙제였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의 군대였던 시절입니다. 숙제는 안 해 가는 것은 명령 불복종, 즉결 처분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A4지 한 장을 채워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종이에 쓰였던 단 한 글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무슨 말을 쓰는지도 모를 언어들을 종이에 나열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저는 그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기원전 5세기에 동서양 할 것 없이 혼란한 난세에 이곳저곳에서 천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고민한 것이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 천 년을 더 인류는 이 문제의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런 걸 고딩한테 답을 내라고 강요한 겁니다.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죠.

지금은 왜 답을 찾지 못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애초에 질문에 잘못되었던 겁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허무한 결론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었던 겁니다. 주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살면서 우리는 이런 실수를 너무 자주 합니다. 섣부른 결론만 내리지 않아도 그런 실수를 줄일 수 있을텐데 성급하기까지 하죠. 답이 없는 것에 정답을 붙이려는 강박은 우리 몸 어디에 설계되어 있는 걸까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오랜 경험과 과학이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고요.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합니다. 그럼 막 살아야 하나요? 그건 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쩔티비,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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