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데이트랜드
오직 빈 공간에만 채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버려진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가득차 있던 곳간은 텅 비어 버리고 소란스레 찾아오던 손님은 인적을 찾을 길이 없어집니다.
오직 탄식만이 공허를 채우며 허무만이 유일한 벗이 되는 시간이죠.
그 누구라 해도 마주할 수 밖에 없어요.
주어진 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또 도망쳐도 그 순간은 피할 수 없이 찾아옵니다.
생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쇠락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만은 누구든 삶의 비극을 절감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하지만 그때 비로소 당신은 동시에 삶의 진실을 직시하게 되죠.
처음부터 당신에게 진정 주어진 것은 빈 공간 뿐입니다.
흰 종이 위에 우리는 그림을 그려요.
빈 그릇 안에 우리는 음식을 채워요.
큰 공터 속에 우리는 건물을 세워요.
시원점은 누구에게나 빈 공간입니다.
그곳에 그려낸 풍경이 모두 무너졌다 해도 당신은 단지 처음으로 되돌아갔을 뿐이죠.
다시 무언가를 채우든 혹은 채우지 못하든 당신이 진정으로 잃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빈 공간을 마주한 순간,
생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오직 빈 공간에서만 삶은 다시 채워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