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신 Nov 01. 2017

'야동'에는 과연 저작권이 있을까?

야동 : 불법 저작물 이야기

‘야동’에는 과연 저작권이 있을까요?



몇년 전, 서울지방법원에서 일본 ‘야동’ 업체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죠.


<일본 야동 제작사, 국내 웹하드업체 복제금지 가처분 기각> 뉴시스, 2015.10.8


이른바 ‘야동’이란 미국에서는 포르노, 일본에서는 AV(Adult Video)라고 불리는 성인용 영상콘텐츠를 가리키는 한국식 은어입니다. 

법에서는 보통 ‘음란물’이라고 정의하지요.


‘음란’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이른바 ‘음란 동영상’은 법으로 유통이 금지된 존재입니다. 

이 ‘음란’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매우 불명확해 이 단어의 의미 논쟁만으로도 소논문 한 편을 쓸 수 있을 정도지만, 우리가 흔히 ‘야동’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포르노나 일본의 AV가 한국법상 금지된 음란물에 해당하는 것만은 분명하죠.


<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 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제74조(벌칙)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제44조의7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한 자>


즉, 한국에서 ‘야동’은 존재 자체가 불법입니다.


이런 불법 콘텐츠인 ‘야동’이 다른 합법적인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저작권이 있을까요? 

예컨대 위조 지폐는 법으로 소유 자체가 금지됩니다. 

만약 불법적인 콘텐츠가 창작되었다는 이유로 불법 창작자의 저작권이 인정된다면 법적으로 타당한 일일까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일본과 미국에서 ‘야동’은 일정 요건 하에서 합법입니다. 

즉, ‘야동’이 허용된 국가의 ‘야동’ 해외 저작권자들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저작권을 인정받고 그에 대한 정당한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도 가입하고 있는 국제 조약인 베른 조약에 따라, 한국은 베른 조약 가입국 국적 외국인의 저작권을 국내법에 따라 보호해줄 필요가 있죠.


그런데 정작 한국 저작권법에는 ‘음란물은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는 조항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타 법에 의해 불법인 창작물에는 저작권이 없다 같은 조항도 없어요. 

요컨대 한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형법, 정보통신망법 등에 의해 엄연히 불법인 ‘야동’에 저작권이 인정될 여지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 한국 검찰과 법원은 곤란한 저작권 판단을 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불법 음란물의 유통은 금지된다.”

“음란물은 불법이므로 저작권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

“음란물을 유통한자는 법에 따라 처벌한다(그러나 음란물의 해외 권리자에게는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의 불법 인터넷 영상 콘텐츠의 태반은 음란 콘텐츠로 채워져 왔고, 

음란 콘텐츠 유통자들은 국가에 수천만원의 벌금은 낼지언정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할 민사상 손해배상액을 해외 ‘야동’ 저작권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괜히 한국 웹하드와 토렌트에 음란물이 범람하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올해인 2015년 6월, 

대법원에서 일본 AV 저작권단체가 제기한 형사재판(저작권법 위반)과 관련하여 아주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어요.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되는 저작물 이란 (중략) ‘창작적인 표현형식’을 담고 있으면 족하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사상 또는 감정 자체의 윤리성 여하는 문제 되지 아니하므로, 설령 내용 중에 부도덕하거나 위법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된다.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1도10872 판결)



즉, 법원이 처음으로 ‘야동’을 명시적으로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로 인정한 겁니다. 

이 대법원 판례 이후 2015년 7월에는, 일본과 가까운 부산지법에서 이례적인 민사 가처분 결정을 내렸죠.


<일본 음란동영상 업체들, 국내 저작권 소송 첫 승소>, 뉴스토마토, 2015. 7.29.



이 사안은 부산지법에서 일본 ‘야동’ 제작업체 16곳이 제기한 ‘영상물복제등 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약 웹하드 업체 등에게 4,000여 건의 ‘야동’ 공유를 중단하라고 결정을 내린 사안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법이 이 결정문에서 적시한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죠.


 “남녀의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 등 음란한 내용이 담긴 해당 영상물 역시 저작권법상의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다.”

비록 불법 콘텐츠라도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고, 

저작권이 인정된다면 권리자의 권리-특히 저작재산권-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본 바와 같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에서는 일본업체 16개가 한국 웹하드 4곳을 상대로, 

우리 작품 5천건의 불법 업로드, 다운로드를 중지시켜 달라며 낸 가처분 사건 3건에서 모두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어떤 보도에서는 이 때문에 “음란물은 저작권이 없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죠.



하지만 이때의 가처분 기각 결정은 '음란물은 저작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일본 AV 업체들이 이번 가처분 신청에서 ‘야동’이 아니라 ‘수천 건의 AV표지 앞뒷면’만을 제출했고, 재판부는 이러한 표지만으로는 해당 ‘야동’이 창작적 표현으로 만들어진 ‘저작물’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공표했을 뿐이죠.


만약 16개 업체들이 수천 건의 ‘영상 증거물’을 제출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어요. 

물론 판사님들이 그 증거물을 모두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겠지만요.


물론 서울중앙지법은 “형법 등으로 처벌되는 음란물에 대해 저작권자가 적극적으로 저작권을 유통하는 것까지 보호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하여 기존의 ‘불법 콘텐츠는 보호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타당한 결론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적시된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죠.


‘야동’ 해외 저작권자의 권리는 무시 받아도 될까요? 

‘야동’ 해외 저작권자의 손해액은 눈 감고 지나가도 국제협약상 상관없는 문제일까요? 

불법적인 콘텐츠에는 아무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까요? 

대법원의 새로운 형사 판례는 이번 민사 사례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이 모든 문제는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야동’은 과연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없을까요?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습니다. 


1. 우선 대법원 판례대로, 저작물성이 인정되는 ‘야동’은 저작권을 인정합니다. 

2. 다음으로 형법상 ‘음란’에 해당하는 ‘야동’은 유통을 금지시킵니다. 

3. 마지막으로 형법과 관련법에 따라 ‘야동’ 국내/해외 저작권자가 정식 유통을 하지는 못하게 하되,
베른협약에 근거하여 해외 저작권자의 저작권과 그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거죠.



물론 이 방법에도 수반되는 문제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가처분처럼 엄연히 일본 현지에서 저작권이 인정되고 있는 ‘야동’ 콘텐츠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음란물은 보호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야동’ 해외 저작권자들의 국내 소송 제기가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겠죠.

이전 01화 디스패치 내용증명의 추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