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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Nov 22. 2017

내 초상권을 돌려주세요

당신의 얼굴,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오늘날은 영상 콘텐츠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시대죠.

이 이야기는 픽션일수도, 논픽션일수도 있지만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느 날, 업무가 한창이라 쉴 틈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죠. 


모든 업무가 그렇지만, 법무 업무는 대부분 법원과 검찰이 관계되어 있는데다 날짜가 법률로 정해져 있어서 하나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일하는 도중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는 굉장히 달갑지 않은 불청객과 같습니다. 


“출연자가 지금 격분했는데 진정 좀 시켜줄 수 있어요?”


변호사가 심리상담사인 줄 아는 사람은 클라이언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동료 직원도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네요.

어이가 없어 잠시 침묵을 지켰더니 재촉이 들어옵니다. 


“지금 출연자가 소송을 걸겠다고 난리란 말이에요!”

“아니, 대체 무슨 일로 소송을 건다는 건데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동의서 안 받았어요?”

“찍을 때 어떻게 그걸 다 받고 찍습니까? 일단 출연자랑 대화 좀 해줘요.”


요새는 콘텐츠 시대라고 하죠. 

스토리형 광고도, 웹드라마도, MCN도 모두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성장 분야입니다. 

딱 이거다 싶은 수익 모델은 아직 없지만, 유튜브나 카카오, 네이버를 통해 ‘영상’을 구독하는 유저 숫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죠.


특히 3분 이내의 짧은 영상 콘텐츠가 인기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이런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하는 사업을 예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 콘텐츠 중 일반인을 대상으로 찍는 광고 부문에서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에요.

대부분 영상을 촬영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가 나중에 결과물이 온라인에 공개된 걸 보고 이게 아니다 싶어 항의하는 분들이 많죠.


“대체 어떤 케이스인 건데요?”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PD(Product Director, Producer)라고 하죠. 전화를 걸어온 콘텐츠 PD는 우물쭈물하다가 답했습니다. 


“이른바 ‘한남충’ 컨셉으로 찍었다가 문제가 됐어요.”


갑자기 두통이 지끈거리더군요. 

최근 시대 조류는 ‘페미니즘 운동’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워왔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차별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청년 세대 여성들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죠.


이는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남성편향적인 컨셉, 주제의 영상이 방영되면 온라인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통계를 보면 옛날에는 인터넷 유저 중 여자가 많지 않았는데,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여자가 많아지면서 콘텐츠 이용 고객 중 여성 비율이 높아져서 더욱 반응이 빨라진 점도 있어요. 


어쨌든 대략 문제가 된 콘텐츠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Q : 여자가 콘돔을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 에이, 아무래도 콘돔은 남자가 사야 되지 않겠어요? 물론 저는 안 사지만.


콘돔 바이럴 광고였던 모양인데, 유저에게 이런 대답을 따내면서 콘돔 광고를 하는 식이었나봅니다. 

이 광고를 통해 구매율이 딱히 높아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답한 남성은 이른바 ‘한남충’으로 온라인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광고는 열띤 논쟁 속에 히트를 쳤을테니 콘텐츠 PD도 아무 손을 쓰지 않았겠죠.


결국 ‘출연자’가 직접 소송을 걸겠다고 격분해 항의 이메일과 문자 수백 통 발송에, 수십 통의 항의 전화도 걸어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소송을 걸려면 어떤 권리 침해나 형법상 범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이 있어야 하죠.

이 경우는 대체 뭘까요?


‘초상권’입니다. 



초상권 : 자기의 초상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



초상권은 법률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보통 헌법적 권리인 ‘인격권’의 부가되는 권리로 한 사람의 얼굴, 음성, 이름 등 특정인의 동일성을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가리키죠. 


이런 ‘초상’을 다른 사람이 임의로 제작, 공표하거나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가 바로 초상권입니다. 


물론 공인의 경우에는 좀 약해요. 

하지만 공인도 ‘초상영리권’이라고 하는, 영리적으로 자기 초상이 이용되지 않을 권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이라고 해서 판례를 통해 확립된 권리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판례에 따라 인정되기도 하고 인정되지 않기도 합니다. 


어쨌든 영상을 살펴보니 내버려둘 수는 없겠더라구요. 

이런 경우 프로세스는 먼저 나간 영상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출연자’와 먼저 섣불리 연락하는 것은 금물이에요. 


변호사는 심리상담사가 아니고, 오히려 상대방을 더욱 격앙시킬 수 있죠. 

모든 제작진에게는 촬영할 때 초상권 동의서를 받거나, 구두로 초상권 이용에 동의하는 말을 찍어두라고 했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둘 다 받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문서상 동의서가 없으면 제작자가 불리해지죠.


물론 이렇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경우에는 초상권 동의서를 받았더라도 차단하는 게 나아요.


“홈페이지와 회사 SNS에 올라간 영상 즉각 차단해주세요. 저는 포털에 연락해 차단조치 하겠습니다. 연락은 그 다음이에요.”

“에, 그런데 구글에 올라가 있는 건 어떡하죠? 트위터나 페이스북,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미 즐비하게 퍼졌는데…….”

“……엄청나게 화제가 된 모양이군요.”


옛날에는 포털만 신경쓰면 되었지만 요새는 SNS로 아주 빠르게 번져나갑니다. 

화제가 되기만 하면 그야말로 수십만 단위의 클릭 수와 수만 개의 SNS 인용 콘텐츠가 되어 불길처럼 뻗어 나가죠.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번져나가는 속도는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이쪽은 일일이 저작권 침해 신고로 차단시키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첨언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라 해도 영상 콘텐츠나 사진을 함부로 퍼가는 일은 일반적으로 저작권 침해에요. 

일일이 권리자가 고소를 안 할 뿐이죠. 



구글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저작권침해 신고란을 통해 정식으로 신고를 해야 합니다. 

포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작권자가 아니라도 저작권 침해 사항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고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포털을 비롯한 온라인 사업자들은 정보통신망법 상 차단 조치만 하면 면책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차단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고자가 ‘저작권자’이거나 ‘초상권 침해자 본인’인 경우에 한해서만 포털이 처리해준다는 겁니다. 


법적으로 권리자만 신고할 수 있냐구요?

당연히 아닙니다. 


포털의 업무 편의상 그러는 거죠. 

왜냐하면 나중에 알고보니 저작권/초상권이 침해되지 않은 허위 신고였다면, 추후 실제 권리자에게 법적 조치를 역으로 포털이 당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일일이 확인할 시간과 여유가 포털 사업자에게도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권리자가 직접 차단 조치를 해야 하는데 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개인이 하기는 어려워요. 


콘텐츠 제작자(저작권자)가 차단을 조치하거나 혹은 방임하는 사이, 초상권침해자는 3가지 옵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진흥원(인터넷진흥원 대신 처리) 신고
2. 민사소송 제소나 형사소송 고소, 초상권침해금지 가처분
3.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신고


마침 우리 회사는 인터넷 뉴스도 하나 내고 있기 때문에 언론중재위원회 신청 대상이기도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해하거나 음란성 영상이 나올 경우 신고를 받아 처리하죠. 

초상권은 개인정보이기도 하니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인터넷진흥원에 개인정보 침해를 신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보다 초상권 침해자에게는 더욱 골치 아픈 방법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준비하는 겁니다.

나아가 초상권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우리 회사에 거는 방법도 있죠.

물론 개인이 한다고 쉽게 해결되지는 않고 보통 변호사에게 의뢰를 해서 진행해야 하는데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초상권 침해자는 보통 명예훼손도 같이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구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할 수 있죠.


물론 초상권 침해자 본인도 포털 등에 차단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침해를 당하고 있는 본인이 이런 조치를 취한다는 건 쉽지도 않고, 개인이 일일이 검색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결정적으로 사실은 국내 포털이든 구글이든 ‘본인’이 ‘본인’임을 입증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립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출연자’가 법적 조치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이래저래 피곤해집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게 급선무죠.

결과적으로는 이번 케이스의 경우 ‘출연자’가 아직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략의 차단은 완료했습니다.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출연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되죠. 


출연자와 연락하게 될 때는 개인 전화보다는 회사 전화나 업무용 핸드폰을 이용하는 게 좋습니다. 자칫 출연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할 때 일정 부분 분리해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내 초상권을 지켜주세요! 나도 권리가 있는데! 게다가 그 질문은 당신네가 유도한 거였잖아요! 동의한 적도 없고!”


물론 사실 촬영한다는 걸 알고, 찍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는 동의했다고 간주되긴 합니다.

적어도 촬영자 측의 ‘고의’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거죠. 


하지만 출연자는 이렇게까지 악성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민사상 손해배상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 원하시는 대로 일단 차단조치를 취했습니다. 한 번 만나시지요.”

“뭐라구요? 정말요?”


전화할 때, 이미 차단조치를 상당히 취한 뒤라면 피해자도 누그러지기 마련입니다.

그 다음은 어느 정도 가능한 보상금을 제시하고, 보상금에 따라 ‘부제소합의서’를 쓰는 거죠. 

이 합의서를 쓰면 합의서를 쓰기 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 혹은 강압이 아닌 이상 소송을 제기해도 모두 법원에서 각하됩니다. 


다행히 출연자는 부제소합의서를 쓰는데 동의했고,

얼마 후 다른 화제가 온라인에서 발생해 검색에서도 사라졌으며, 

콘텐츠 PD는 행복하게 다른 논쟁거리가 될 광고를 찍으러 갔습니다. 


이런 일은 당장이 문제일 뿐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사라지게 되어 있거든요.

다만 저는 그 이후에도 고생을 좀 했죠.


영상이 한국 포털이나 한국에 진출한 구글, 페이스북 외에 해외 사이트로 번져 나갔거든요. 

프랑스에 본사가 있는 데일리모션, 미국의 비메오가 유명한 동영상 사이트죠. 

잘 지워주지도 않아서 심한 경우에는 해외 로펌을 써서 요구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사례죠. 


어쨌든 이 날의 초상권 침해 이슈는 대략 1주일 정도만에 막은 내렸습니다. 



물론 이런 사안과 별개로 악플을 많이 달면 모두 명예훼손 고소 대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다행히 이 케이스에서는 출연자가 형사고소나 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에서는 형사고소로 인해 욕설 리플을 단 유저들 중 벌금형을 받은 사례도 있거든요. 


혹시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발견하더라도, 이 점은 유념하세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지, 도덕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플’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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