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웹썰

기본단위

웹소설 단편-원포인트 꽁트

by 기신
뉴욕의 일몰.jpg


기본단위


자신만의 집을 가지는 것은, 그의 오래된 꿈이었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는 걸음마를 막 떼자마자 동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작았고, 세상은 너무 컸다.

처음 보는 모든 것들은 신기했으나 그의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선 채로 위로 올려다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커다란 공터에 다다랐다.

미끄럼틀과 그네, 정글짐이 덩그라니 있어 아이들이 놀이터로 쓰는 곳이었다.

그에게 그곳은 별천지처럼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의 놀이기구 중 그가 놀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모래바닥에 주저앉아 노는 일 뿐이었다.


모래는 단지 잘게 부서진 바위에 불과하지만, 아이에게 모래로 할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는 점성이 다른 모래를 뭉쳐 덩어리를 만들고, 흩어지는 모래를 모아 산을 만들고, 색깔이 다른 모래로 무늬를 만들었다.

모래에 열중하다 보면 길고 긴 하루도 어느 새 지나가 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로 만드는 단 하나의 놀이를 발견했다.


모래집을 짓는 ‘놀이’였다.


그가 살고 있는 집처럼 사각형의 상자 같은 집.

그림책에서 보던 지붕과 마당이 있는 도형 같은 집.

상상 속에서 생각해낸 기묘하고 신기한 환상의 집.


점성이 다른 모래도, 흩어지는 모래도, 색깔이 다른 모래도 집을 만들 때는 하나가 되었다.

덩어리를 만들고, 산을 만들고, 무늬를 만드는 일도 집을 만들 때는 하나가 되었다.

서로 다른 재료와 서로 다른 ‘놀이’가 하나의 형태로, 하나의 놀이가 되어 이루어지는 과정에 그는 정신없이 몰입했다.


바닥을 미끈하게 밀고, 핵심이 되는 덩어리를 쌓는다.

그 위에 산을 쌓고 장식을 하며 집을 지으면 모래집이 완성된다.


기반, 핵심, 형태.


그는 그 단어조차도 모를 정도로 어렸지만,

그의 놀이는 언제나 기반으로 시작해 형태를 만드는 결과로 끝났다.

그 과정은 그를 홀렸고, 같은 과정을 지나 나타나는 언제나 다른 모래집들은 그에게 아무에게도 이해시키기 어려운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찰나’였다.


걸어서 공터를 해멜 때 길었던 하루는 모래와 놀면서 짧아졌지만, 모래집을 짓기 시작하자 아예 찰나처럼 변했다.

해가 지면 집으로 끌려가야 했던 그는 아쉬운 눈으로 하루종일 만든 모래집을 돌아보곤 했다.

더 아쉬운 것은 다음 날 아침이면, 이미 모래집은 놀이기구를 타고 다니는 더 큰 아이들에 의해 사라진지 오래라는 사실이었다.


짓고, 짓고, 또 지어도 모래집은 모래처럼 스러졌다.

그는 집을 가지고 싶었다. 남들이 함부로 부술 수 없는 집을.

자신만의 집을.


그는 자랐고, 세상은 여전히 그보다 훨씬 컸다.

크게 된 후 보게 된 세상은 어렸을 때보다 오히려 더 넓고 광대해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때처럼, 그는 집을 가지고 싶었다.


그는 집을 짓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모래가 아니라 더 단단한 재료로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함부로 아무나 건드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도 없는 견고한 집을 짓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공부했고, 또한 짓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집을 짓기 시작한 그 날, 그는 감격해 밤잠을 설쳤다.

콘크리트와 철근, 시멘트로 이루어진 아주 단단한 집.

시공을 시작해 준공을 이루고, 테이프 커팅식을 하며 마침내 그 집에 사람들이 들어가 사는 모습을 보며 그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은 놀이가 아니다.


집을 짓는 일은 어렸을 때와 똑같이 진행되었다.

기반, 핵심, 형태.


부지를 선정해 기반공사로 바닥을 다지고, 그 위에 기본 공사로 핵심 골격을 만든다.

여기까지만 이루어지면, 이후 철조의 골격과 콘크리트의 형태를 부여해서 건물을 올리는 일은 금방 이루어진다.

똑같은 방식으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수많은 건물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금세 지루해졌다.


남의 요구에 따라, 납기일을 맞추며, 남의 집을 지어주는 일은 금방 질리고 말았다.

지루하고, 심상하며, 일상이다.

단지 그는 이 모든 것이 일이기 때문에 재미없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은 생활을 책임져야 하고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살았다.


자신이 지은 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의 집도 생겼다.

그러나 그가 짓는 집은 더 이상 그를 흥분시키지 못했고,

그가 사는 집은 그만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날도,

그는 사각형의 뼈대를 만들어 세우는 작업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른바 ‘대공사’로 불리는 거대 규모의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였다.

집을 짓고, 건물을 짓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뛰어들어 설계하고, 기획해서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처럼 심상했다.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 앞에서 평온한 그를 보며 칭송했지만, 그는 단지 언제나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놀라지 않았을 뿐이다.


똑같은 과정, 똑같은 방식, 똑같은 단위의 일.

가끔 건물이 무너지거나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은 건물이나 그의 현장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렸을 때 그가 했던 것처럼, 모든 작업을 순서를 밟아서 했고, 과정을 빼놓지 않고 거쳤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상상했다.

이 뼈대가 형태를 갖추어 실제 현실에 발현될 모습을.

그 모습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른 건물들과 비슷하면서도 똑같았지만, 안에 깃든 원리는 똑같았다.


기반, 핵심, 형태.


문득 그는 생각했다.

이 순서를, 이 과정을, 이 원리를 언제부터 생각했던가.


그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지금까지 그가 이 초고층 프로젝트에 다다르기까지,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가만히 회상하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과정을 밟아서.

그가 집을 짓는 것처럼.


가장 처음 짓기 시작했던 집은 모래집.

그가 아직 말도 할 줄 몰랐을 때, 너무나 커보이던 공터에서 짓던 가장 처음의 집.

그 마음대로, 그가 뜻하는대로, 그가 원하는대로 만들었던 첫 번째 집이자 마지막 집.


그때부터 무수한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그때 모래집을 두고 돌아서며 석양 속에서 생각했던,

그 집을 짓지 못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거대하고, 높은 뼈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렸을 때 그가 가지고 놀 수 없었던 놀이기구들을, 미끄럼틀과 그네와 정글짐을 보았던 것과 똑같이.

이 뼈대는, 건물은, 결과물은 가짜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니며, 그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공터의 놀이기구들처럼.


그날, 그는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의 설계 책임자 자리를 사직했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에게 더 이상 그 자리와 그 일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모두를 뿌리친 채로 공터로 향했다.


어렸을 때 너무나 커보이던 공터는 이미 너무나 작아져 있었지만,

모래밭은 똑같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석양이 져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그는,

모래밭에 앉아 모래집을 짓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모래집을 완성한 후에야 그는 다시 모래밭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제,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진짜 집을.


- 3줄 요약
자신만의 집을 가지는 것은, 그의 오래된 꿈이었다.
오랜 세월을 돌아와서야 그는 깨달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단지 ‘진짜’ 집을 짓는 것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슈팅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