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원포인트 꽁트
너를 내가 처음 본 것은 그때, 그해, ‘겨울’이야.
그 무렵, 나는 법률에 빠져 있었어.
법률은 단순히 법조문과 단서조항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문장이 아니야.
법률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먼저 사람들이 모여 각각의 소원을 가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사람들이 나서.
국민들은 그들의 소원을 종이 한 장, 도장 한 방에 담아 함에 넣어.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소원과 의지를 받아 의원이 선출돼.
자주 거짓말도 하고 소원을 항상 배신하지만,
어쨌든 299명의 의원들은 여의도의 한 자리에 모여 의지를 하나로 모아 법안을 승인하고 공표해.
온전히 공표된 법률은 그때부터 사람과 제도를 규제하고 움직이게 만들어.
마치 마법과 흡사한 구조야.
법조문 하나하나에는 최소한 수십만 명, 크게는 수백만의 꿈과 의지, 소망이 실려 있는 셈이지.
국가 전체를 총괄하는 헌법의 경우는 4천 5백만, 아니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이의 소원이 함께 해.
법조문에서 특별한 마법을 도출할 수 있어.
한 사람의 소원도 기이한 마법을 부릴 수 있게 하는데 수십, 수백, 수천만의 염원이라면 어떻겠어?
하지만 한 번도 법을 공부해본 적 없는 문외한이 법전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냐.
모르면 아는 이에게 배워라. 모든 배움의 일반법칙이지.
나는 그러기로 했어.
옛날에는 마법사든 주술사든 무당이든 모두 스승에게 물어가며 배우거나 낡아빠진 책을 뒤졌지.
하지만 21세기 현대 사회는 넷의 바다에 광범위한 지식 덩이가 돌아다니는 법이거든.
간혹 마법 비의 중 일부가 정확하게 넷에 올라온 것을 보고 기겁한 적도 있어. 아마 풋내기거나 심심한 마법사였던 모양인데, 당장 잡아서 족칠까 하다가 냅뒀더니 누리꾼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잊혀지긴 했지.
넷은 내게 법학 스터디에 참가할 것을 조언했어.
한국에서 사법고시는 광범위한 법학 학습자를 양산하는 기반이고 법학을 독학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수만 단위래. 스터디를 모집하는 게시글도 수도 없더라.
나는 그 중 하나를 적당히 골랐어.
어차피 법에 대한 기초만 잡을 생각이었어.
기대도, 흥미도 없었지.
단지 지식을 충족하고 나면 버려지고 흩어질 그룹일 뿐이잖아?
첫 모임에 어슬렁거리며 카페로 나간 날도 그랬어.
가만히 앉아 사람 좋게 웃고 있기만 했지.
마법사는 그 자체로 특별하기에 평소에는 튀어 보이면 안 되거든.
네가 나를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거야.
“와, 정말 또치 같아.”
난데없이 종소리 하나가 머리를 때렸어.
웃으며 반쯤 졸고 있던 나른함이 순식간에 도망가 자취를 찾을 수 없었어.
낮고 속삭이듯 흘러갔지만 울림은 마치 종소리의 여운처럼 끊이지 않아 재차, 삼차로 연이어 나를 때렸지.
고개를 돌리자 난생 처음 보는 묘한 느낌의 여자가 다가왔어.
나른해 보이지만 눈빛이 살아있지.
생글생글 웃다가도 장난기 어린 눈동자가 몇 번 구르면 순식간에 딱딱하고 섬연하게 표정이 바뀌어.
어딘가 약은 것 같으면서도 순진한 구석이 있고, 변덕스러우면서도 천변만화하는 표정을 하나로 묶는 심지가 있어.
돌아서 앉을 때는 야한 느낌을 주다가도 가만히 빤히 쳐다볼 때는 누구보다도 고고해.
나중에 안 거지만 짜증을 낼 때는 주위가 어둡고 환하게 웃으면 사방이 밝아지더라.
묘했어.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얼굴이었어.
사람의 얼굴은 만상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네 얼굴은 실로 천변만화였어.
각도에 따라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잖아.
보면서도 계속 새로운 사람을 보는 듯 해 신기했어.
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적응하더니 재미있게 재담을 나누기 시작했어. 하지만 네 표정에는 또 묘하게 어두운 구석이 있었지. 나는 한참 후에야 슬쩍 끼어들었어.
“제가 왜 또치예요?”
또치는 타조야.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조연이지.
물론 인생이 무대라면 나는 너의 인생에서 단역에 불과한 조연일지도 몰라.
하지만 또치가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이람?
“응? 들었어요? 그야 타조 닮았잖아요.”
너는 슬쩍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놀리는 어조로 답했어. 그런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거든.
난 진지하게 대꾸했지.
“난 오히려 둘리를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예? 푸하핫!”
물론 둘리는 마법을 부리니까 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냐.
하지만 너는 호쾌하게 비웃어 버렸어.
나는 그때 기이한 느낌을 받았지.
그 비웃음은 진짜였어.
사람들은 보통 가면을 쓰고 살아가.
사람들의 표정은 단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기 위한 가짜야.
하지만 너는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가면을 쓴 느낌을 주지 않았어.
너의 탄성도, 너의 장난도, 너의 비웃음도 모두 진짜였어.
묘했어.
하지만 나는 공부가 바빴고 더 이상 생각할 여유는 없었어.
그날부터 법학 스터디가 시작되었어.
법학은 생각처럼 지루한 학문이었지만 법조문은 언제 봐도 흥미로웠지.
한 마디 말마다 수십의 해석이 교차했고 해석이 달라지면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져.
마치 마법 주문 공식이 하나만 어긋나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과 비슷해.
그 중에서도 내 흥미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헌법이었어.
법학에 문외한인 나와 달리 너는 법대생이었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때문에 전혀 법을 모르는 내게 너는 가끔 기분이 내킬 때면 법조문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곤 했어.
물론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아무리 알려달라고 해도 콧방귀 한 번 뀌지 않았지.
“잘 들어요. 이건 헌법 제10조예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추구권 조항.
어이없게도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지만 묘하게 마음에 드는 조항이야.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
따지고 보면 마법사들이 그렇게 ‘단 하나’에 목을 매는 것도 단 하나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멍하니 법을 바라보고 있자 네가 슬쩍 짜증을 내며 야단쳤어.
“이봐요. 좀 집중 좀 해요.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는 거예요? 내 예쁜 얼굴? 응?”
“예? 예쁜 얼굴?”
“그럼요. 나 예쁘잖아요?”
너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어.
물론 모든 여자들은 자신이 예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도 ‘예쁜’ 여자야.
하지만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얼굴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어.
설사 실제로 예쁘다고 해도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지.
하지만 너는 종종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놀리곤 했어.
가끔 다른 스터디원들이 네 얼굴에 넋을 잃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런 모양이야.
하지만 내게는 묘한 얼굴로 보였어, 처음에는.
“난 법조문을 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정말 마음에 드는 조항이라.”
“행복추구권요?”
문득 너는 한숨을 쉬었어.
“정말 행복을 추구한다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언제나 그렇듯이 네 표정은 순식간에 변화했어.
어둡고 침침해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였지.
너는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었어.
아직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아니지만 희망은 있을 거야.
그런데 불행해?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
어차피 나는 나의 ‘단 하나’ 조차 찾지 못한 마법사일 뿐인걸.
다른 사람들의 고민까지 알고 해결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스터디는 재미없지만 착실하게 진행되었어.
법학의 문외한이었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당방위니 위법성 조각이니 하는 법률 용어를 재미삼아 주워섬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어.
물론 너는 그럴 때마다 내게 타박을 주곤 했지.
그런 용어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계속>